[시인의 시읽기] 조윤희 시집 '모서리의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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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조윤희 시인 약력>

▶55년 전남 장흥 출생 ▶90년 '현대시학' 에 '우기의 하늘 밑에선' 외 8편을 발표하면서 등단 ▶99년 첫시집 '모서리의 사랑' 펴냄

'나' 에 대해 말해본 것이 언제였을까?

'나의 위장병' 이나 '나의 구두' 에 대해서가 아닌 순수히 '나의 내면' 에 대해서…. 하지만 교양 있는 성인 행세를 하려면 되도록 자기 얘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더더욱 '고통' 이나 '부적응' 또는 '좌절' 에 대한 얘기는 금물이다.

상대를 부담스럽게 해서는 안되니까. 그런데, 괜찮을까?

자기에 대해 말할 기회가 없으면 자기를 정리할 기회도 없다.

겉으로 말끔해보이는 사람이 속은 더 아수라장이더라는 정신과 의사들 얘기가 떠올라 문득 겁이 나기도 한다.

누구에게 '나' 를 말할까?

어디다 '나' 를 쏟아놓고 들여다볼까?

다행히도 시인들은 평소에 그렇게 꼭꼭 여며두고 꽝꽝 눌러둔 '나' 를 시를 통해 거침없이 발설한다.

어떤 시집은 발설되고 터트려진 '나' 의 비명과 신음으로 귀가 멍멍할 정도이다.

"온 들판을 흔들며 지나가는/들소들, /떼, 떼, 떼들, /그 들소 발굽 아래/자지러지는/개미/조 윤 희 (시 '타락천사2' 전문) ," "들소떼들의 발굽 소리를 넣어두고도/잘룩한 개미허리로/두개의 세상을/만들어버리는 習性, /입과 항문 사이가 막혀/창자 속에서/독이 되는 똥/조 윤 희" (시 '타락천사 3' 전문) 라고 자기를 털어놓는 조윤희의 경우도 그렇다.

어쩌다 시인들의 모임에 가면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채 나직하게 인사를 건네곤 하염없이 상대의 말을 삼키기만 하고 있던 그 조윤희가 타락천사 '조 윤 희' 이며, "하루종일 울고, 술을 마시면서 울고, 은행나무 아래서 울고, 흐드러진 벚꽃 아래서 울고, 버스를 기다리며 울고, 차창 밖으로 나무를 보면서" (시 '내 그림 속으로 들어온 風景' 중에서) 우는 이가 또한 그 조윤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놀랍고 흥미로워서 이 시집을 펼쳐들고 있을 리는 없다.

시인이 고백하는 "벽을 밀고 있는" '나' (시 '기억의 고집' ) ,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生" 을 사는 '나' (시 '사물함 속의 날들' ) , "항아리 속의 얼음 덩어리" 인 '나' (시 '토탈 이클립스' ) , "규격품이 아니어서/입구에도 걸리고/출구에도 걸리고/공정관리법에도 걸" 리는 '나' ( '규격품이 아니어서' )에서 맞닥뜨려지는 나의 '나' 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집을 읽는 것은 이렇게 '나' 를 들여다보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이상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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