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본 31년전 권희로씨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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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68년 2월 20일 오후 8시20분. 일본 시즈오카 (靜岡) 현 항구도시 시미즈 (淸水) 의 유명 나이트클럽 '밍크스' . 재일 한국인인 한 사내의 눈과, 빌리지도 않은 돈을 갚으라고 사내를 협박하는 야쿠자 두목 소가 (曾我幸夫) 의 눈이 서로 부닥치며 불꽃이 튀었다.

소가는 사내에게 '조센진, 더러운 돼지새끼' 라고 욕을 퍼부었다.

순간 재일 조선인이라는 차별과 억압 속에 40년 동안 살며 쌓였던 분노가 폭발한 사내는 총을 갖고와 방아쇠를 당겼다.

…8발, 9발, 10발째 소가 등 야쿠자 2명은 맥없이 침몰했다.

◇ 성장배경 = 권희로씨는 1928년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부산이 고향인 박득숙 (朴得淑) 씨와 부두 노동자였던 권명술 (權命述) 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權씨는 그가 네살 때 작업중 사망했고, 3년 뒤 어머니가 김종석 (金鍾錫) 씨와 재혼하며 성씨도 金씨로 바뀌었다.

그는 34년 시미즈 소학교에 입학했으나 '조센진' 이라는 멍에 때문에 늘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

"쭈글쭈글한 내 도시락에 담겨 있는 보리밥을 보고 일본 아이들이 심하게 놀려 주먹다짐을 했다. 그러나 담임선생은 다짜고짜 슬리퍼를 벗어 나만 마구 때렸다. "

3학년 때 일어난 '도시락 사건' 이다.

결국 그는 소학교 5학년 때 학업을 포기하고 가출해 이름을 여덟차례나 바꿔가며 일자리를 찾았지만 번번이 조선인 신분이 들통나 직장에서 쫓겨났다.

◇ 인질극 전말 = 소가와 그의 부하를 살해한 권씨는 여론에 호소하기 위해 인근 스마타쿄 (寸又峽) 온천마을의 후지미야 여관을 점거한다.

그는 투숙객 등 18명을 2층에 감금한 채 총과 다이너마이트를 갖고 장장 88시간 동안 재일 한국인의 권익보장을 요구하며 경찰과 대치했다.

그의 주장이 언론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면서 재일동포의 인권과 차별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본 국가권력은 결국 그의 요구에 굴복하고 말았다.

다카마쓰현 경찰본부장의 사과방송이 여러차례 NHK를 통해 일본열도에 전달됐다.

그러나 그는 대치 나흘째 기자로 위장 잠입한 경찰 8명에 의해 체포됐다.

◇ 옥중투쟁 = 체포된 권희로는 8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75년 11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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