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인간은 똑똑해지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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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보르헤스의 단편 중에는 무한한 감수성과 완벽한 기억력을 가진 인간을 그린 것이 있다.

물론 비극이다.

사람들은 높은 지능을 동경하지만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망각이라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지능을 버릴 수 없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달리 고급문명을 만들 수 있었던 근거가 바로 지능이다.

일반 생물의 진화는 신체기능의 발달을 통해 이뤄진다.

인간은 이와 달리 정보를 축적하고 교환하는 기술을 발전시킴으로써 생존과 번영에 유리한 조건을 획득해 왔다.

이것이 신체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의 차이다.

사회내의 경쟁에서 지능의 중요성이 커져 온 사실도 문명발전이 지능에 의존해 온 경향을 보여준다.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 산업사회로 옮겨오는 동안 경쟁 승리의 조건은 높은 지능으로 좁혀져 왔다.

사회관계의 무대가 사이버공간으로 옮겨가면서 더 심화되고 있는 현상이다.

식품, 약품에서 보조구, 수련법까지 지능강화 상품이 범람하는 것도 지능이 현대사회의 경쟁에서 긴요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지능이 높아지면 학생은 학업성적을 높이고, 구직자는 취직시험을 잘 보고, 디자이너는 잘 팔릴 제품을 만들고, 투자자는 값 오를 주식을 골라 살 수 있다.

효과가 확실한 획기적 지능강화 상품이 머지않아 나올 것 같다.

두뇌에는 사상 (事象) 들을 연결시켜주는 감수 (感受) 세포가 있어 기억작용의 기본단위 노릇을 한다.

이 감수세포의 노화 (老化)가 바로 기억력의 퇴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최근 프린스턴대 조 치엔 박사의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감수세포의 복제를 늘려줌으로써 노화현상을 억제시키는 실험을 쥐에게 행했다.

그 결과 '똑똑한 쥐' 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인간이 더 똑똑해질 필요가 있을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의 두뇌는 진화를 통해 똑똑할 만큼 똑똑하게 돼 있는 것 아니겠느냐, 더 똑똑하게 만든다는 것이 자연법칙을 벗어나는 것 아니냐 하는 의문이다.

그러나 인간두뇌의 본격적 진화가 불과 5만년 전에 시작됐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진화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으리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자연법칙을 벗어나는 짓을 인간이 처음 하는 것도 아니니 지능강화 기술의 현실화는 기정사실로 봐야겠다.

골치 아픈 일들이 예상된다.

돈 있는 사람들이 이 기술을 활용할 기회를 먼저 가질 테니 '지능의 평등'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인간 수준으로 지능을 높인 동물에게는 인간 대접을 해줘야 되나. 늘어난 지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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