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문제가 된 담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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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흡연피해 소송이 전세계적으로 활발한 가운데 국내에서도 처음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제기됐다.

폐암에 걸린 외항선원이 국가와 한국담배인삼공사를 상대로 적절한 예방대책과 유해성 고지 소홀 등의 책임이 있다며 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법원이 담배 제조업체의 책임을 인정해 거액의 손해배상을 판결한 사례들이 있어 과연 국내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관심거리다.

우리가 이번 소송에 각별히 주목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과도한 흡연실태와 비정상적 담배사업 정책 때문이다.

고교생과 성인남자의 흡연율이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당국의 자료가 말해주듯이 우리 국민들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담배의 해악에 많이 노출돼 있다.

폐암.심장병.만성 기관지염 등 담배와 관련된 질병으로 연간 3만5천명이 사망하고 흡연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6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흡연연령은 갈수록 낮아지고 여성의 흡연인구도 늘고 있다.

당연히 정부가 관심을 갖고 흡연피해를 줄이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상황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국민건강증진법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에게 흡연 및 과다한 음주가 국민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교육.홍보해야 한다' 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정작 정부의 담배정책은 국민의 건강권과는 모순된 방향으로 펼쳐지고 있다.

국가가 담배사업권을 독점하고 있고, 시.군세의 30~40%를 차지하는 담배소비세가 없다면 지방공무원들의 월급조차 제대로 줄 수 없는 자치단체가 수두룩하다.

국가와 자치단체는 국민들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권장하기는커녕 내 고장 담배 피우기 운동을 펴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미국 46개 주정부가 담배로 인한 질병 때문에 의료비가 오른다며 소송을 제기해 담배회사들로부터 25년간 2천60억달러의 배상을 받기로 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열악한 지방재정과 세원 발굴의 어려움 등 현실에 비추어 당장 정부가 담배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정부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담배의 폐해를 외면해서도 안된다.

담배의 해악은 명확하고 흡연피해에 대한 제조업자의 책임은 분명해지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담뱃갑에 경고문을 써넣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다.

이번 소송은 그동안 물밑에 있던 담배문제를 국가적 과제로 부상시킨 것으로 봐야 한다.

담배의 해악과 피해실태에 대한 연구와 조사를 꾸준히 실행하고 적극적인 국민계몽도 해야 한다.

정부는 마침 담배인삼공사의 민영화를 추진 중이다.

이를 계기로 정부의 담배정책도 소비자의 건강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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