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이의상(46·여·아산 온천2동)씨가 25년 전 돌아가신 어머님의 칠순생신을 맞아 5남매를 대표해 ‘사모곡(思母曲)’을 띄웠습니다. 전문을 사진과 함께 소개합니다. 소중한 글 주신 독자께 감사 드립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4년 여가 흐른 1989년 2월, 셋째가 대학을 졸업했다. 아버지도 참석하지 못해 5남매만이 기념촬영을 했다(가운데 이의상씨).
오늘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칠순 생신일입니다. 생존해 계셨다면 자식들이 친척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흥겨운 잔치를 열어 드리고 즐거운 하루를 보냈을텐데….
어머님이 안 계신 어머님의 칠순일, 우리 형제들끼리 절에 가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차리고 어머님의 천상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칠순제를 드렸어요. 두어시간 넘게 제를 올리는 동안 분명 어머니가 우리가 모여 있는 법당에 같이 계시리라 믿으면서요.
늘 아프게만 우리 가슴에 남아계신 어머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만나고 싶어도 만날수 없는 그 아린 고통은 살아가고 있는 우리 오남매 몫이 었지만. 올망졸망한 철부지 오남매를 이 휑한 세상에 남겨두고 가신 어머님의 마음을 당시 어떠셨을까. 아직 못다한 일들이 너무도 많은 남아있는 세월을 접어가며 홀연히 눈감으실 땐 살을 에고 뼈를 깎는 것보다 큰 고통을 느끼시지는 않았을까.
이젠 걱정하지 마세요. 모두 잘 성장했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막내가 이젠 30대 애기 엄마가 됐어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지 벌써 2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고 쓰라려 옴은 변함이 없어요.
숨을 거두신 어머니 발목에 남아있는 미미한 체온이 차츰 차츰 식어가는 게 안타까워 어머니의 가녀린 발목에 매달려 오열과 통곡을 쏟았던 우리 5남매. 그 땐 세상이 온통 하얘지는 것 같았어요. 20살 넘은 내가 그랬으니 동생들은 어땠을까.
세상의 벼랑 끝에 남아있게된 불안감에 몸부림치던 그 날이 벌써 25년 전 일이네요. 어머니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지요. 그러나 어머니는 아직까지 우리들 가슴속에 늘 같이 살아가고 계십니다.
비록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우리끼리 살아온 삶이지만 정말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 왔습니다. 이 모두 어머니가 우리들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촛불이 돼 늘 밝게 비추고 계셨기 때문이지요.
그런 어머니가 오늘은 너무도 보고 싶습니다. 꿈 속에라도 나와 주시면 좋을텐데. 꿈속에서 조차 만나지지 않는 어머니가 오늘은 너무나도 보고 싶습니다. 천상에서 빛나는 아름다운 별이 돼 떠나신 우리 어머니~. 사랑합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
2009년 10월 맏딸 이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