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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칼럼] 독일, 미래로의 천도 -테오 조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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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화물 트럭들이 본과 베를린을 잇는 아우토반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이미 새로운 수도 베를린에 정착했고, 다음달 7일이면 새로 단장된 의회의 유리지붕 아래에서 가을 회기가 시작된다.

독일 역사에 새로운 장 (章) 이 열리는 것이다.

1870년과 1871년의 프랑스.독일간 전쟁 와중에서 탄생한 비스마르크 정권은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8년 패배와 혁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붕괴될 때까지 48년간 지속됐다.

비스마르크 정권을 이은 바이마르 공화국은 극우와 극좌 세력의 협공 속에 겨우 14년을 연명했다.

이어 아돌프 히틀러가 '제3제국' 을 출범시켰으나 12년반 만인 1939년 히틀러 자신이 제멋대로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먼지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독일인들은 히틀러의 침략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그들의 나라는 40년 동안 분할됐다.

동독 정부는 국민들을 또다른 압정 (壓政) 으로 몰고 갔으며, 서독에서는 전후 (戰後) 세대들이 독일 국민들이 가져왔던 것 중에서 가장 품위있고 풍요로운 연방을 건설했다.

독일의 분열은 89년 베를린장벽 붕괴로 막을 내렸고, 이후 몇달 동안 통일만이 유일한 관심사였다.

독일을 다시 전체로 묶는 과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 독일인들이 예기치 못한 난관에 봉착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갈 수 없는 지점에 와 있다.

통일은 더 이상 실패할 수 없으며 실패하지도 않을 것이다.

독일 정부가 베를린으로 되돌아감으로써 어떤 면에서는 독일의 미래에 대한 의구심, 심지어 우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치 억압의 기억이 아직 남아 있으며, 그 기억은 각종 영화.TV시리즈물.사진 등을 통해 재현되고 있다.

군화들, 수척해진 홀로코스트 (유대인 대학살) 생존자들, 아우슈비츠의 무시무시한 가스실…. 이러한 이미지들이 아직도 히틀러 희생자들의 의식 속에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들은 독일 사람들이 영원히 폐기처분한 과거의 잔재들이다.

그것들은 더 이상 현재의 징후가 아니며, 미래의 예시 (豫示) 는 더욱 아니다.

과거는 잊혀져서는 안되지만, 오늘날의 독일 국민들은 자신들과 자신들의 선조들이 참회해왔다고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

그들은 나치 시대의 업보 (業報) 를 짊어져 왔으며 유대 조직들, 유럽 전역에 걸친 강제노역자들, 희생된 집시들, 동성연애자들, 여호와의 증인들, 그리고 기타 박해받은 단체들에 1천억마르크 (약 65조원) 이상을 배상했다.

과거 50년 동안 서독의 수도였던 본은 이러한 과거 반성의 의미를 반영하고 있다.

그 누구도 이 참회로 인해 위압받을 수 없을 것이다.

루드비히 베토벤의 고향이자 옛 정취 물씬 풍기는 라인 강변의 이 도시는 겉치레나 위엄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 역시 독일인들이 잿더미 속에서 그들의 나라를 건설하고, 산산조각난 그들의 명성을 회복하며, 국제 친선도모의 길로 가는 것을 발견하고 존경받는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 와 유럽공동체의 일원임을 자부하는 기간 동안 독일 국민들을 위해 충실히 봉사했다.

베를린으로부터 통치받는 반세기 동안 독일 국민들은 교훈을 뼈저리게 배웠다는 많은 증거를 전 세계에 제시했다.

민주주의와 법치 (法治) , 시장의 자유와 사회결속, 개방과 다원주의 (多元主義) 등은 그들 사고방식에 접목됐다.

거기에 동독인들은 10년 전 그들이 공산주의를 포기했을 때 용기와 대담성까지 보탰다.

이러한 것들은 상실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고 희석되지도 않을 것이다.

베를린 공화국은 본 공화국이 세운 기초 위에 존재할 것이다.

과거 50년 동안 독일 국민들을 인도했던 평화.화해.공조라는 긴요한 것들은 앞으로도 계속 유효할 것이다.

베를린 공화국은 빌헬름 2세의 제국주의적 오만함이나 아돌프 히틀러의 범죄적이고 우월주의적인 광기 (狂氣)에 의해 지배받지 않을 것이다.

21세기에는 프러시아적 군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적 메시아주의가 독일인들을 유혹하지 못할 것이다.

'제3제국' 동안 베를린은 악마정신의 진앙지였다.

독일 정부의 재정립이 이러한 악마정신을 되살리지 않을 것이다.

베를린과 연계된 다른 전통들 - 프레데릭 대왕의 관용, 44년 히틀러를 암살하려 했던 장교들의 자랑스런 용기, 냉전기간 중 공산주의 침략에 저항한 서방측의 강한 의지, 그리고 공산주의 압제의 배격이 독일의 미래를 형성할 것이다.

정확하게 보자. 베를린의 역사는 억압과 굴복의 역사가 아니다.

인내와 저항, 그리고 끈기의 역사다.

굴복하지 않는 자유, 17세기 독일로 피난 온 위그노 교도들의 골리즘, 그리고 적절하고 공정하며 현실적이라는 예리한 감각 등은 세대 (世代) 를 거쳐 가면서 베를린 사람들의 품질 보증서가 돼 왔다.

그들은 베를린 공화국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독일은 이제 새로운 수도를 갖게 됐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세계가 과거 50년 동안 알아 왔던 독일과 다름이 없다.

독일은 힘자랑을 하지 않을 것이다.

독일은 국력에 합당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말한 대로 독일은 다른 누구에게도 우월감을 갖지 않을 것이며 열등의식에 빠지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행동할 것이다.

프랑스의 외무장관 위베르 베드린으로부터 한 구절 빌리자면 '크고 정상적인 국가' 로서 행동할 것이다.

독일에 대해 걱정할 필요도 없고, 눈살을 찌푸릴 필요도 없고, 안달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 테오 조머는…

67세. 주간 디 차이트의 공동발행인. 독일을 대표하는 언론인이자 유럽의 대표적인 지성. 독일의 튀빙겐대, 미국의 시카고대와 하버드대에서 역사.철학.정치학을 전공했고 박사학위논문은 '독일과 일본의 비교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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