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기 왕위전] 이창호-유창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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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흑의 흐름이 좋다" 검토실선 이구동성

제4보 (72~100) =창밖으론 계속 비가 내린다. 다음 날이 삼성화재배 예선 결승이어서 외국기사들이 한국기원에 나와 이 판을 구경하고 있었다.

때마침 劉9단은 하변을 돌파하고 있었고 그 맹렬한 기세가 마치 둑을 무너뜨리는 격류와도 같았다. 흑75에 대해 76이 쓰라린 후퇴. 76이야 어쩔 수 없지만 78은 사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한계선이라고 한다.

이 수로 '참고도' 백1로 물러서면 흑4의 한방이 너무 싫다. 흑8까지가 자연스런 수순이라지만 백은 연결했을 뿐 집이 없다. 바둑에서 엷게 두면 장래가 걱정이고 실리가 없으면 끼니를 걱정하듯 현재가 서럽다.

그래서 78의 저항은 필연이며 79의 사나운 절단으로 중앙 백이 유랑 신세가 되는 것은 각오해야 한다.

"흑의 흐름이 좋다" 고 모두가 말한다. 흑이 우세한가 물으면 "사방이 미정이어서 그건 단정할 수 없지만 흐름만은 아주 좋다" 고 한다.

생각하면 세상 모든 것은 흐름 속에 존재한다. 지금 흑은 계곡물처럼 시원하게 흐르고 있지만 승부에서 너무 잘 나가다가 넘쳐버리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 때는 얼음장 밑에서 은인자중하던 백이 돌연 솟구쳐 올라 대세를 장악할 것이다.

99, 선수로 틀어막고 중앙을 엿보는 형세가 돼서는 흑이 유망한 국면. 이제부터 흑은 어떤 방향으로 경영해 나갈 것인가. 견실한 수비인가, 아니면 계속 공격적인 자세를 견지할 것인가.

특히 넓고 넓은 좌상 백진은 집으로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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