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한국 조기유학생의 말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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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내에서 고교 교실이 무너져내리고 있다는 보도에 이어 미국 내 한 교포신문은 로스앤젤레스 공립학교에 불법입학하는 한국의 조기유학생 실태를 다뤘다.

미국법을 어겨가면서까지 고국을 탈출하는 우리 부모들의 애처로운 모습을 그렸다.

국내에선 조기유학 자체를 사치라 치부하며 타지에서 어린 자식들을 키우는 부모들을 동정하기보다 질시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주변에서 목격되는 조기유학생들의 현실은 부러움을 살 모습만은 아니어서 안타깝다.

오히려 고국에서 출발한 우리 교육의 문제점이 바다 건너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다.

우선 기숙사생활을 하는 조기유학생들이 미국 학교의 엄격한 규율을 지키지 못해 쫓겨나는 경우가 적지 않아 학부모들의 말 못할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우리 교육이 남과 더불어 사는 훈련에 소홀함을 말해주는 사례다.

아울러 연일 국내 언론에 보도되는 사회지도층의 부패와 부정이 말해주듯 지키도록 만들어 놓은 법과 규칙을 준수하는 데 학부모들부터가 익숙하지 않다.

나이가 모자란 자식들을 학년을 높여 입학시키거나 미국 내 부모의 직장을 허위로 신고해 공짜로 미 공립학교에 등록하는 등 미국법을 마음먹고 위반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미국사회의 빈틈을 교묘하게 이용해 내 자식만 챙기면 된다는 식의 비뚤어진 교육열이 아이들에게 어떤 교훈을 남길지 걱정스럽다.

하기야 고국의 교육제도를 믿지 못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자식들 조기유학에 나선 부모들이 이것저것 따질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디에서 자식을 교육시키든 그 목적이 남보다 앞서가는 인간을 만들기보다 남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인물을 만들자는 데 두어져야 마땅하다면 조기유학의 난맥상이 분명 건강한 모습은 아니다.

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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