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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과학 칼럼

과학에 대한 오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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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흔한 오해 가운데 하나가 과학자는 세상의 모든 것을 알거나 스스로 안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는 시각이다. 심지어 과학자 중 종교에 회의적인 사람이 있으면 조금 아는 자의 오만으로 보거나 ‘눈에 보이는 세상’만을 믿는 편협한 사람으로 치부하기도 하고, 반대로 과학자가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 그의 믿음을 남다르게 보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과학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과학자란 무엇을 안다기보다 왜 우리가 그것을 안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해 근간이 되는 과거의 경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면 아마 그것은 신념과 지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가운데 지식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보고 듣고 한 것을 원인과 결과라는 논리적인 틀에 끼워 맞추어 놓은 경험의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지식은 관측과 실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람들은 한번 얻어진 지식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으나 모든 지식은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실험과 관측에는 늘 오차가 있고 또 그 자체가 시간적·공간적으로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에 의해 더 나은 실험이나 더 많은 관측이 이뤄지면 지금까지 알고 있던 바가 수정되기도 하고 때로는 완전히 바뀌기도 한다.

과학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역법과 귀납법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역법이 주로 사용되는 분야는 수학인데 이는 삼단논법을 생각하면 된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연역법이 복잡한 자연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일찍이 간파했다. 한 예로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다. 나폴레옹은 인간이다. 따라서 나폴레옹은 이성적이다’고 했을 경우 이렇게 얻은 결론이 반드시 옳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으로써 베이컨이 제안한 것은 실험과 관측에 바탕을 둔 귀납법이다. 예를 들어 모르는 상자가 있다고 치자. 그리고 거기에 1이라는 숫자를 넣었더니 2가 되어 나왔고, 또 2라는 숫자를 넣었더니 4가 되어 나왔다고 하자. 이러한 일련의 실험을 통해 우리는 그 상자가 무엇을 두 배로 만드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더 많은 실험을 통해 예상한 결과가 나온다면 우리의 확신은 더 강해지겠지만 단 한번이라도 예외가 생기면 당초의 생각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베이컨은 이처럼 실험과 관측을 통해서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창했고 이러한 귀납적 방법에 의한 탐구가 근대 과학의 출발점이 됐다.

계몽주의 시대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인간의 물질적 삶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그 결과 과학을 절대 가치로 여기며 모든 문제를 과학으로 해결하려고도 한다. 하지만 과학은 우리가 알고자 하는 모든 것을 명쾌하게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우리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지, 과연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는지 등 정작 우리가 알고자 하는 사안에 대해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학에 대해 실망을 하고 다른 곳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지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 지식의 한계이지 과학적 사고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비록 제한적이지만 우리 인간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면밀한 관찰과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서뿐이다.

이상묵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