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독립 투표 12일 앞둔 동티모르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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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인도네시아의 동쪽 끝 작은 섬, 동티모르가 30일로 예정된 분리독립 결정 투표를 앞두고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다.

낮에는 독립을 원하는 티모르저항국민회의 (CNRT) 등의 합법적인 유세가 펼쳐지지만 밤에는 독립을 반대하는 밀리샤 (민병대)가 지배하는 무법지대로 변하고 만다.

수라카타바 등 현지 언론들은 합법적 유세가 시작된지 4일째인 17일부터 독립 반대파들의 반발이 한층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독립에 반대하는 정부관료와 군인.밀리샤 등은 인도네시아 독립 45주년 기념식을 갖고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의 영토며 분리란 있을 수 없다" 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념식 후 8세에서 17세까지의 청소년들로 구성된 밀리샤들은 시내 곳곳을 돌며 CNRT사무실에 위협사격을 가하는 등 소란을 피웠다.

동티모르 분리독립 투표를 감시하고 있는 유엔 동티모르파견대 (UNMET) 는 이날 인도네시아 정부에 공정한 투표감시를 다시 한번 촉구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당국은 합법적인 유세가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치안확보에는 별다른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UNMET가 발표했다.

CNRT 등은 이번이 동티모르가 독립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며 주민들의 적극적인 투표참여와 분리독립 지지를 요구하고 있다.

CNRT는 지난 75년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에 합병된 이후 사라진 청.녹.백 3색기를 앞세워 "자유 동티모르" 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현지주민 대다수는 독립을 원하면서도 밀리샤의 위협에 위축, 투표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이번에 치러지는 동티모르 분리독립 결정 투표는 당초 지난 8일로 예정됐으나 인도네시아 당국의 소극적인 자세로 미뤄진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국제사회의 여론에 밀려 약 45만명의 동티모르 유권자들이 자치보다 분리를 원할 경우 이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속으로는 결코 분리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 확고하다는 분석이다.

수하르토 전대통령은 군대를 내세워 각 지역의 분리독립요구를 묵살해 왔다.

지난 6월 총선에서 승리, 강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메가와티도 최근까지는 동티모르의 분리를 허용할 수 없다는 견해를 공공연히 표명했다.

동티모르의 독립이 자칫 다른 지역의 분리 움직임을 더욱 자극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동티모르가 분리독립 결정을 내리더라도 밀리샤를 앞세워 소란사태를 유발하고 인도네시아군이 공개적으로 개입해 다시 직할통치를 꾀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외신종합 =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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