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한전 해외매각- 이렇게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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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발전설비의 해외매각 등을 포함한 한전 구조조정을 놓고 한전노조가 파업을 결의했으나 정부는 당초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불가피한 조치' '국부의 유출' 등 찬반 논란이 분분한 이 사안에 대해 양측의 논리를 들어본다.

◇ 당장해야 - 조성봉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연구단장

전력산업에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

95년에 9조원 채 못됐던 한전의 빚이 98년 말에는 23조원을 넘어섰다.

올해에도 빠른 속도로 빚이 늘어나 이러다간 공기업 최초로 기아나 대우사태가 나타나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

물론 공기업이니까 정부가 국민의 혈세로 이를 막겠지만 그 짐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올 것이 뻔하다.

도대체 왜 이런 문제가 나타나는 것일까.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전력산업을 명령과 통제의 정부주도로 운영해 왔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전력산업은 정부의 각종 규제.통제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게다가 진입규제로 한전이 사실상 독점적으로 전력사업을 수행하는 바람에 경쟁에 따른 자기성찰과 효율성 증진노력이 미약하다.

전기요금은 공공요금으로 분류돼 강력히 통제받고 있으며, 특히 농사용.산업용 전기요금은 원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공기업으로서 한전 경영층이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경영재량권은 제한돼 있다.

게다가 정부는 전력산업을 국내 무연탄.천연가스.지역난방.원자력뿐 아니라 수 (水) 자원 등에 대한 지원창구로 삼고 있다.

몇개의 발전소를 무슨 연료로, 얼마 만큼의 규모로, 언제까지 짓느냐와 같은 중요한 결정도 사장이 아닌 정부의 계획으로 결정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력산업에서 가격 메커니즘과 같은 시장원리는 잘 작동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많은 왜곡과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소비자는 값싸게 전기를 사용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상 이에 대한 대가는 다른 여러 형태로 물고 있는 셈이다.

오랜 관치금융으로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효율성과 경쟁력이 취약해진 것처럼 전력산업도 현재 총체적 부실화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전력산업의 운영원리가 시장중심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본다.

발전설비의 해외매각 등을 포함한 민영화와 경쟁촉진의 두 축으로 시장원리를 도입한다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지금 당장 필요하다.

◇ 국부유출- 김윤자 한신대교수 경제학

한전 자체의 지난해 경영통계, 유수한 회계법인 등 외부 용역기관의 3년여에 걸친 경영진단, 학계와 정부 산하 관련 연구소의 전문연구 등을 종합할 때 한전의 총요소 생산성은 세계 4위 수준에 해당한다.

특히 전력요금은 가장 낮은 수준에 속하는 반면 투자보수율은 3~5%의 극히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이는 한전이 비교적 높은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이윤율을 억제해 그동안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산업동력을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는 데 주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밖에 한전은 국내 석탄산업 지원을 위해 무연탄연료를 의무적으로 사용하고 농업용 전력은 원가 이하로 공급하는 등 공기업에 맞는 각종 정책기능을 수행해 왔다.

지난해 정부의 일괄적인 '공기업 민영화' 방침에 따라 한전의 발전사업 일부가 해외에 매각될 예정이다.

그러나 민영화나 경쟁체제가 경영효율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각국의 전력사업은 90년대를 전후한 민영화 이후 다시 합병바람이 불어 독과점화가 진행되고 있다.

즉 세계의 전력산업은 미국의 인터젠, 일본의 토멘, 영국의 파워젠과 독일의 지멘스 등 선진국 독점기업이 과점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한전을 해외매각할 경우 외국자본측은 투자보수율의 인상과 전력요금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그런데 그런 조건이라면 현재의 한전도 어떤 사기업 못지않게 수익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전의 기존 경영구조에는 개선의 여지가 많다.

특히 정권의 개입, 관료주의적 경직성 등은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해 온 문제점이다.

그렇다고 외환위기의 급한 불도 일단은 지나간 상황에서, 경제위기로 국내 자산가치가 가뜩이나 저평가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간산업의 알짜 공기업' 을 해외에 헐값으로 매각해도 괜찮을까.

공기업의 경영효율 향상은 오히려 참여적 전문책임체제의 도입 등 경영민주화에 달려 있다.

이번 매각방침이 혹시라도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실적' 을 위한 스케줄 짜맞추기식의 일방통행은 아닌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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