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선열들의 자취] 김원봉등 5명이 의열단 결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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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와 친일 관료 등에 대한 파괴.암살 활동을 벌인 항일 (抗日) 결사조직 '의열단' 의 활약상이 자세히 담긴 재판기록이 처음으로 발굴, 공개됐다.

정부기록보존소 (소장 金善永) 는 경성지방법원이 1921년 6월 21일 (53쪽) , 1923년 5월 26일 (35쪽) , 1923년 6월 12일 (1백69쪽) 의열단원과 이 단체 관련자 32명에게 내린 판결문 3건을 찾아냈다고 13일 밝혔다.

그동안 의열단의 활동은 개인 회고록이나 신문기사 등에 의존해 연구됐을 뿐 단원의 인적사항.행적이 소상히 담긴 공문서가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판결문에는 폭발물 취급 벌칙 위반죄로 징역 8년을 선고받은 이성우 (李成宇.당시 22세. 함북 경원군 송하면 송하리). 곽재기 (郭在驥.당시 29세.충북 청주군 강외면 상봉리) 등 의열단원에 대한 항일 기록이 자세히 적혀 있다.

이들은 1919년 조선총독부. 동양척식회사를 폭파하고 친일 관료 등을 살해하기 위해 중국에서 폭탄.탄약. 총기 등을 구입, 조선으로 밀반입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특히 1919년 6월 중국 지린 (吉林) 성 퉁화 (通化) 현에서 김원봉 (金元鳳).양건호 (梁健浩.본명 李鍾岩). 서상락 (徐相洛). 김옥 (金玉.본명 金相允).이성우 등 5명이 모여 의열단을 결성한 것으로 돼있어 '1919년 11월 황상규 (黃尙奎) 주도 아래 13명이 모여 조직했다' 는 기존 학설의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그후 김원봉의 주도 아래 단원이 10여명으로 불어나 그해 10월부터 암살.파괴 활동을 도모한 것으로 돼있다.

또 조선총독 암살계획에 가담했음에도 불구하고 강도예비죄로 구속수감된 김한 (金翰).안홍한 (安弘翰) 등의 활동도 새롭게 밝혀졌다.

◇ 의열단이란 = 교육.대중운동보다 폭파.테러 등의 무력항쟁을 벌인 항일 독립운동 단체. 이들은 결성 직후 1920년 6월 16일 조선총독부를 파괴하고 1923년 3월 15일 조선총독을 암살하려다 각각 실패했다.

이후 일본 현지로 활동무대를 확대, 1924년 일제 관공서 폭파를 모의하는 등 모두 세차례 항일 거사를 도모했다.

이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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