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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 칼럼

아프간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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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티핑 포인트(다른 국면으로 바뀌는 임계점)로 치닫고 있다. 취임 초 아프간에 병력 2만1000명의 증파를 결정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또다시 1만4000명의 추가 파병을 고심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려워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초 탈레반 소탕에 뒀던 전쟁의 목표를 알카에다가 아프간을 미국 본토 공격의 기지화하는 걸 막는 쪽으로 새롭게 규정했다. 그러나 현재 아프간 전쟁에서 알카에다는 주요 요소가 아니다. 미군은 각 부족의 민병 및 사병과 연합한 탈레반에 맞서 싸우느라 정신이 없다.

미국은 잘못된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이 아프간에 진군한 뒤 알카에다 수뇌부는 아프간에서 쫓겨나 파키스탄으로 향했다. 파키스탄이 국적을 초월한 테러리스트들의 주요 기지이자 은신처로 떠오른 것이다. 그런데도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간에 병력을 쏟아 붓는 한편 파키스탄엔 지원을 늘리고 있다. 파키스탄은 현재 세계에서 단일 국가로는 미국의 원조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다.

알카에다를 소탕하기 위해서라면 미국은 아프간에 더 이상 추가 파병할 필요가 없다. 아프간에 막대한 지상군을 주둔시키거나 대규모 지상작전을 벌일 필요 없이 첩보 작전과 무인정찰기, 크루즈 미사일 공격을 통해 미국은 파키스탄의 산간 지방 부족들 틈에 은신한 알카에다 잔당을 색출할 수 있다.

만약 오바마 행정부의 목표가 아프간 땅에서 탈레반을 완전히 몰아내는 것이라면 미국의 병력 증파를 이해할 수 있다. 탈레반은 공습이나 첩보 작전이 아닌 대규모 지상 작전을 통해서만 소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 알카에다 잔당이 목표라면 왜 육군 중심 전략을 펴는가. 아프간이 베트남식 수렁이 되기 전에 오바마 대통령은 추가 파병 계획을 재고해 봐야 한다. 탈레반 연합을 이루는 개별 세력을 하나로 묶어 주는 공동의 적이 바로 외국 군대란 점에서 아프간 주둔 미군은 점진적으로 감축하는 것이 옳다. 아프간에서의 미군 철수는 미국이 걱정하는 것처럼 국제 테러 조직의 무장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탈레반을 결속시키는 요소를 없애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물론 파키스탄 군의 실질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탈레반은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1996년의 영화를 재연하고자 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아프간 내 비탈레반, 비파슈툰족 권력이 더 강하고 더 조직화돼 있다. 미국은 첩보작전, 무인폭격기, 공습작전을 통해 아프간 내 탈레반의 집권을 막을 수 있다. 2001년 아프간에서 탈레반을 몰아낸 것도 탈레반 정권에 저항하는 북부동맹(Nothern Alliance)의 지상 작전과 협력한 미군의 공군력이었다. 미국은 아프간 수렁에서 빠져나옴으로써 파키스탄의 이슬람 반군 지원을 뇌물과 감언이설로 막는 대신 훨씬 균형 잡힌 대테러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브라마 첼라니 인도 정책연구센터 교수
정리=이에스더 기자 ⓒ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