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고용 없는 회복, 투자 없는 성장을 우려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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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주 정운찬 총리 내각 출범에 맞춰 “경제상황에 대한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중환자가 회복 기미를 보일 때가 가장 중요하다”며 “잘 대처하면 회복되지만 잘못하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객관적이고 냉정한 상황 인식이라고 본다. 나라 안팎의 각종 경제지표가 호전되고 있지만 아직 기뻐할 때는 아니다. 미국의 실업률은 멈출 줄 모르고 국내의 설비투자는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기 때문이다. ‘더블 딥(double dip·경기회복 후 재침체)’의 불길한 조짐이 어른거리고 있는 것이다.

미 노동부는 지난주 9월 비(非)농업 부문 취업자가 26만3000명 줄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실업률은 9.8%로 1983년 6월(10.1%)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문제는 경기부양책으로 공공 부문의 임시 일자리는 늘고 있는데 민간 부문의 취업자 수가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토록 우려해온 ‘고용 없는 회복’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걱정스럽기는 국내의 설비투자도 마찬가지다. 어제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설비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16.6%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건설수주는 마이너스 29.5%로 3개월 만에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이른바 ‘투자 없는 성장’이다. 한·미 양국의 재정투자 약발은 점차 소진되는 반면 민간 부문이 경제추동력을 이어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용 없는 회복은 신뢰성이 약하다. 소비자들의 지갑이 얇아지면 전 세계 소비지출은 줄어들고 결국 경기 회복세가 꺾일 수밖에 없다. 투자 없는 성장 역시 믿을 수 없다. 투자 확대 없이 우리의 경기 회복을 장담할 수 없고, 미래의 성장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용 없는 회복과 투자 없는 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더블 딥은 피할 수 없다. 오히려 상반기의 반짝 지표들이 재정투자 확대와 저금리가 만든 신기루일지 모른다. 여기에다 중국 정부는 지난주부터 철강·시멘트·석탄산업의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세계 주요국들도 일제히 재정적자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우리 경제가 또다시 험난한 가시밭길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 개입을 늘려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이론은 심각한 불황 때 위력을 발한다. 그런 케인스조차 “정부의 무리한 개입이 계속되면 우리 모두 죽을 수 있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 민간소비와 설비투자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부 역할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정책의 초점부터 민간소비와 설비투자를 자극하는 데 맞춰야 한다. 그동안 공격적인 속도전에 치중해온 재정투자도 민간소비와 설비투자를 이끌어내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수도권 규제 완화 등 설비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카드는 과감히 동원할 필요가 있다. 법인세 인하 등 감세기조 역시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할 것이다. 이 대통령의 말처럼 중환자는 회복기가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은 환호할 때가 아니라 긴장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