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씩씩한 가족, 따스한 가족, 아름다운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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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고등어를 금하노라
임혜지 지음, 푸른숲, 281쪽, 1만 2000원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함민복 지음, 현대문학, 299쪽, 1만1000원

책 읽기에 알맞은 절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때 맞춰 책을 찾는 것은 더더욱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짧은 추석 연휴, 여의치 않게 고향을 찾지 못한다면 책을 뒤적이며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거나 제대로 사는 길을 궁리해 보는 것도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등어를…』은 씩씩하고 건강한 책이다. 지은이는 독일에서 35년을 산 한국 여성. 건축사를 전공한 공학박사로, 물리학 박사인 독일인 남편과 두 아이 이야기를 썼는데 이게 가족을 소재로 한 여느 에세이와 상당히 다르다. 알콩달콩하거나 눈물겨운 이야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대신 통념과 상식을 깨뜨리는 이야기가 그득하다.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독일에서 고등어나 참치를 먹는 것이 변태냐 아니냐를 두고 식구들이 밥상머리에 앉아 “한국식 장유유서도, 독일식 예의범절도 없이” 토론을 벌이다 고등어를 식탁에서 ‘추방’한다. 유별나다고 할지 모르나 개고기를 먹는 것보다, 정력에 좋다고 코뿔소를 도륙하는 것이 야만스런 음식문화라 판정하는 걸 보면 꼭 그렇다 하기도 힘들다. 목욕물 절약하느라 끙끙대면서도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이가 제 이름을 쓰지 못하는데도 걱정 않는 지은이를 보면 참으로 당차다는 생각이 든다.

소명의식이나 공명심에서가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주인인데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지 않을 핑계가 없다”는 소박한 이유로, 성실하게 일하고 규칙을 준수하며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괴짜가족’ 이야기. 유쾌하면서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길들은…』은 곱고 잔잔하다. ‘강화도 시인’이라 불리는 지은이가 인터넷 포털 ‘다음’에 연재한 글을 모았다. 『눈물은 왜 짠가』 등 전작을 읽은 독자들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일상의 소소한 것에서 웅숭깊은 의미를 길어내는 시인의 남다른 시선 덕분이다.

식목일을 앞두고 철물점 앞에 놓인 묘목의 향기를 맡다가 시인은 불안을 엿본다. 나무들이 충청도에서 실려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트럭에 누운 채 실려 오며 묘목들은 얼마나 불안했을까”란 위로를 전한다. 고향 이야기를 하며 차왕-창, 바람 소리를 들려주던 함석대문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마치 바람이 나도 담을 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문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고 기억하며 그 함석대문이 추억 속에서 나를 늘 기다리고 있다고 적었다.

아끼는 후배의 결혼식에서 생전 처음 주례를 서며 “두 손으로 밥상을 받쳐 들 때 삶에 의지가 돋고 마음이 경건해지고 착해지듯 그런 맘으로 평생을 살라”고 당부했다는 시인을 한가위에 만나면 마음이 절로 넉넉하고 따뜻해지지 않을까.

김성희 기자,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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