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을 흐르는 龍脈 위엔 마오쩌둥이 잠자고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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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호 09면

중국 선양(瀋陽)시 고궁박물관에 새겨진 화려한 용 조각. 뱀과 사슴, 새와 물고기 등의 이미지가 섞여 만들어진 용은 세 발 솥, 옥새, 사슴과 함께 중국인 사고 속의 축선을 상징한다.

세 발 솥의 무게를 묻고, 나라의 법통을 대표한다는 옥새를 다퉜던 것은 천하의 권력을 움켜쥐기 위해 야망을 펼쳤던 중국인들의 공통된 모습이다. 그와 유사한 ‘제품’이 있다. 이번에는 동물로 등장한다. 바로 ‘사슴’이다.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의 한 대목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진나라가 그 사슴을 잃은 다음에 천하의 사람들은 모두 그 사슴을 잡으려 다투고 있다(秦失其鹿, 天下共逐之).”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로 천하를 제패했다가 곧 멸망한 진나라 왕실에 이어 천하의 여러 영웅이 나서서 힘을 겨뤘다는 얘기다.

유광종 기자의 키워드로 읽는 중국 문화-축선(軸線)3

사슴은 황제의 자리, 또는 최고의 권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기록에 힘입어 사슴이라는 동물은 그 이후의 여러 기록에서 ‘No 1’의 권력, 또는 그를 쟁취한 최고 권력자로 자리매김한다. 후대에 들어 이 말은 ‘사슴은 누구 손에서 죽을까(鹿死誰手)’ ‘중원의 사슴을 좇다(逐鹿中原)’라는 성어로 정착한다. 앞 장에 나왔던 ‘세 발 솥의 무게를 묻다(問鼎)’와 궤를 같이하는 성어다.

사슴과 함께 등장하는 동물이 용(龍)이다. 사슴과 뱀, 말과 새, 물고기와 맹수의 생김새가 한 데 어우러져 만들어진 게 용이다. 용은 물론 상상 속의 동물이다. 땅과 하늘을 오가며 천상의 메시지를 인간의 세상으로 전해오는 메신저다.

따라서 용은 ‘하늘의 아들’, 즉 천자(天子)의 상징이 된다. 중국인들은 이 용을 자신의 상징으로 내세운다. 이른바 ‘용을 이어 온 사람들(龍的傳人)’이다. 왕조 권력을 따라 면면히 이어져 온 중국 역사 속에서 용은 그 왕조의 황제들과 함께 이제는 중국 자체를 대표하는 상징이 된 것이다.

용은 풍수적인 관념에도 등장한다. 최고의 지기(地氣)가 모여 일정한 흐름을 형성하는 곳에는 용맥(龍脈)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중국인이 커다란 지형을 풍수의 관념으로 설명할 때는 이 용맥이 그 지역의 핵심 땅 기운이 흐르는 중심, 말하자면 축선이 된다.

용맥이 지나면서 기운이 가장 왕성한 곳에는 황제가 거주하는 황궁(皇宮)이 들어선다. 이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이 교차하는 선에 따라 황궁 외의 궁성 건물들이 들어선다. 명대와 청대에 걸쳐 황궁이었던 자금성(紫禁城)은 용맥의 축선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이 정밀하게 대칭을 이루면서 지어진 중국 최고의 건축이다.

이 축선에 새로 들어선 게 앞서 언급한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이다. 자금성 정북 방향 12㎞ 지점에 지어졌다. 용맥의 축선이 옌산(燕山)산맥에서 베이징 도심으로 향하는 시작 지점에 있다. 이 올림픽 스타디움 못지않게 중요한 축선에 다른 건물이 하나 있다. ‘마오쩌둥(毛澤東) 기념당’이다. 1976년 사망한 마오쩌둥의 시신이 이곳에 놓여져 있고 다수의 중국인은 예나 지금이나 그를 경배하기 위해 이 건물에 들어선다.

기념당뿐이 아니다. 그 약간 북쪽 방향으로는 인민영웅기념비(人民英雄紀念碑)도 있다. 모두 자금성 정북 방향에서 남쪽으로 이어져 오는 ‘현대 중국의 축선’에 들어서 있다. 그러나 더 관심이 가는 곳은 마오쩌둥 기념당이다. 베이징을 이야기할 때 떠올리는 천안문(天安門)은 중국 국가 휘장(徽章)을 장식하는 상징이다. 이 천안문 정문 위에는 광장을 내려다보는 마오쩌둥의 거대한 초상이 걸려 있다.

이 축선에 늘 걸려 있는 마오의 그림자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중국 공산당이 마오쩌둥 사망 이후 그 시신을 이 축선에 놓은 이유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마오는 그 자체가 중국 건국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제1의 공헌자다. 그로 인해 새 사회주의 중국이 건국될 수 있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에게도 공적과 함께 적지 않은 과오(過誤)가 있다.

66년부터 10년 동안 중국을 대재앙으로 몰고 갔던 문화대혁명은 마오의 결정적인 과오다. 그에 앞서 그가 벌인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 등 과격한 사회주의적 실험은 수천만 명이 사망한 일대 참극이었다. 그와 같은 결정적인 착오에도 마오의 시신은 용맥이 지나는 ‘황제의 축선’에 놓인 채로 오늘날에도 농촌에서 상경한 수많은 중국인의 참배를 받고 있다. 중국의 국가 상징에 오른 천안문의 정문 위에 걸린 대형 초상 속에서도 마오는 지금의 역동적인 중국을 내려다보고 있다.

어디 그뿐일까. 세계의 금융시장에서 점차 힘을 얻어 가고 있는 중국 인민폐 안에서도 그의 얼굴은 살아 있다. 달리 보자면 마오는 현대 중국의 살아 숨 쉬는 축선이다. 축선을 살리려는 중국인의 사고는 30여 년 전 사망한 마오쩌둥의 시신이 평안하게 흙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어쨌든 현대 중국의 상징이요, 축선이다.

축선을 허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국 공산당은 그 점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개혁·개방의 필요성이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절박할 만큼 중국의 30여 년 전 상황은 매우 뒤떨어져 있었다. 중국은 당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실험에 나선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독특하고 대담한 실험이다.

특징은 사회주의라는 축선을 살렸다는 점이다. 공산당으로서는 개혁·개방으로 어쩔 수 없이 맞게 되는 개방의 파도에서도 영구 집권을 위한 ‘축선’을 굳게 긋고 나선 것이다. 마오는 그 공산당의 축선을 위한 현대적 개념의 세 발 솥이요, 옥새이자 사슴 또는 용인 셈이다. 그 축선은 천안문의 마오 이미지, 지난해의 베이징 올림픽, 요즘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실시하는 천안문 광장의 국기 게양대(역시 축선 상에 놓여 있다)의 오성홍기(五星紅旗) 게양식과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


중앙일보 국제부·정치부·사회부 기자를 거쳐 2002년부터 5년 동안 베이징 특파원을 역임한 중국통이다.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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