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맥주세 낮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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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북아메리카로 향한 뉴잉글랜드 이민 1백2명의 당초 목적지는 버지니아였다.

이들이 오늘의 플리머스인 매사추세츠주 연안에 상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준비한 음식이 바닥났기 때문이었다.

후에 '필그림 파더스' 라 불리게 되는 이들 최초 이민 가운데 한사람이 그때의 상황을 일기에 생생하게 기록했는데 다음의 한 대목이 재미있다.

"맥주만 충분하더라도 우리는 더 갈 수 있을텐데. 맥주가 바닥난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

그들에게 맥주가 얼마나 소중한 식품이었는지를 짐작할 만 하다.

우리나라에 맥주가 들어온 것은 이제 겨우 60년 남짓하지만 서양에서는 이미 고대사회에서부터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알콜이 들어 있다는 점에서는 술에 틀림없지만 맥주는 늘 술보다 음료수에 가깝게 취급됐다.

술에 대해 가혹했던 세금도 맥주에 대해서만은 너그러웠다는 기록이 곳곳에 보인다.

5천4백여년 전 나일강변에 있던 이집트 고대도시 멤피스에서 당시 인기가 가장 높았던 '보리술' 에 대한 세금 부과가 맥주세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물론 독주 (毒酒) 등 다른 술에 비해 세율은 아주 낮았겠지만 시민들의 반발이 예사롭지 않았던지 그 맥주세도 얼마 지나지 않아 폐지됐다고 한다.

어떤 생산품에 대해서도 세금을 부과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 주세 (酒稅) 의 경우 함유된 알콜 도수 (度數)에 따라 세율을 정하는 세계적 추세는 타당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우리나라 주세는 유독 맥주에 가혹하다.

위스키 1백%, 소주 35%에 비해 맥주에는 무려 1백30%를 부과하고 있다.

소주와 위스키의 세율을 같게 해야 한다는 세계무역기구 (WTO) 의 결정에 따라 당국이 주세조정작업을 하고 있지만 맥주에 대한 배려의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가 한결같이 맥주세의 인하를 바라고 있는데도 당국은 오불관언 (吾不關焉) 이다.

세계에서 가장 독한 맥주는 스위스에서 만들어지는 13.7도 짜리 맥주, 그리고 가장 순한 맥주는 한때 독일에서 만들었던 0.2도 짜리 맥주라고 한다.

'맹물같은' 맥주에도 세금을 부과하지는 않을 것이고 보면 이제 우리의 맥주회사들은 독한 맥주를 만들어 다른 독주들과 세율의 형평을 맞추든지, 아니면 물처럼 마시는 맥주를 만들어야 할는지. 어쩐지 요즘 마시는 맥주는 유독 그 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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