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북한 헌법개정 … 정책변화 기대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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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최근 공개된 북한 개정헌법의 특징은 한마디로 군사국가를 헌법적으로 제도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972년 헌법이 ‘혁명적 수령론’을 법적으로 제도화한 ‘주석제 헌법’이라면, 98년 헌법은 선군정치를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차원의 ‘국방위원장체제 헌법’이다. 2009년 헌법은 98년 헌법 개정 당시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선군혁명노선’과 관련한 내용을 구체화하고, 국방위원장의 권한과 임무를 신설한 것이다.

98년 헌법 개정 때는 국방위원회 중심의 국가기구 개편을 단행했지만 권한과 임무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문화하지 못했다. 아마도 김일성 사후 과도적 위기관리체제로 운영하다가 정세가 좋아지면 정상국가체제로 환원하려는 의도에서 임시적인 기구개편을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결과 국방위원회는 ‘국가주권의 최고군사지도기관이며 전반적 국방관리기관’으로,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일체 무력을 지휘통솔하며 국방사업 전반을 지도한다’고 ‘국방’에 한정하는 관리와 지도를 명문화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론 국방위원회 위원장이 국정 전반을 운영하는 ‘국가의 최고직책’이었다.

그런데 이번 개정헌법에선 국방위원회 위원장의 임무와 권한을 대폭 강화해 그동안 실질적으로 행사해 왔던 권한을 헌법적으로 제도화했다.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북한의 최고 영도자로 국가의 사업 전반을 지도할 뿐만 아니라 조약 비준 폐기, 비상사태 선포 등에 관한 임무와 권한이 부여됐다. 서방식 대통령제와 유사한 권한이 주어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일성 사후 김정일 시대 기본통치 방식으로 선군정치를 표방했다. 98년 헌법 개정 당시에는 국방위원회 중심의 국가기구체계를 마련했지만 선군체제를 끌고 갈 지도사상을 구체적으로 반영하지 못했다. 이번 개정헌법에서 주체사상과 함께 선군사상을 “자기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고 하고, 군인을 주권계급의 하나로 다시 추가했다. 72년 헌법에는 ‘병사’가 주권자로 들어 있었지만, 98년 헌법에서 빠졌다가 이번에 ‘군인’으로 용어를 바꿔 다시 추가됐다. 선군사상을 지도사상으로, 군인을 주권자로 추가함으로써 군사국가를 헌법적으로 완성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선군사상은 주체사상과 동격으로 보기 어렵고 주체사상을 구현한 선군사상으로 봐야 할 것이다.

개정헌법에서 ‘공산주의’가 삭제된 것은 주목된다.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먹는 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공산주의는 먼 미래의 이상향이다. 노동에 따른 분배를 실현한다는 사회주의 목표도 달성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가까운 장래에 수요에 의한 분배를 달성한다는 공산주의는 공허한 것이다. 중국은 사회주의단계가 100년 이상 소요되는 긴 과정으로 보고,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을 제시하고 고도성장을 하고 있다. 북한도 우리식 사회주의론을 제시하고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본 것으로 보인다. 제국주의와의 대결이 지속되는 가운데 사회주의를 지키는 것이 급선무라는 관점에서 공산주의 목표를 삭제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의 인권개선 요구를 반영해 ‘인권존중’ 문구가 추가됐지만 사상혁명 강화와 혁명화, 노동계급화 등 집단주의 강화와 관련한 조항을 신설해 사회통제를 강화하려는 의지를 헌법에 명문화했다.

기대를 걸었던 경제개혁과 관련한 조항의 신설은 눈에 띄지 않는다. 결국 김정일 시대는 군대를 앞세운 군사국가로 그럭저럭 버텨 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의미 있는 정책전환이 이뤄지고 이를 법제화하려면 북·미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체제 안전에 확신을 가질 때 가능할 것이다. 본격적인 정책전환은 강성대국의 대문을 연다는 목표 시점인 2012년 이후나 돼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