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살아있다](7)황학동 냉장고도사 권덕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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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황학동시장의 공구.전파 상가에서 20년째 중고 냉장고를 취급해 온 권덕순 (權德順.40.여) 씨. 權씨는 하나전자.태화전자 사장이라는 이름보다 '똑순이' 혹은 '냉장고 도사' 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황학동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 지난 80년. 전북 정읍에서 중졸 학력을 끝으로 서울로 상경, 구로공단의 공장을 전전했다.

70년대 후반부터 가정용 냉장고의 보급이 일반화되면서 權씨는 우연히 중고 냉장고 수리에 관심을 뒀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손재주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더구나 당시에는 애프터서비스의 개념이 거의 없었던 시기라 사업구상은 그녀 '맘대로' 척척 진행됐다.

그러나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스무 살 갓 넘은 처녀가 굿은 일을 배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냉장고의 기계 구조와 특성을 이해하기도 버거웠고, 남자들의 텃세와 여성에 대한 무시로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악물고 일했다. '한 달에 하루만 쉴 것. 아침 5시 출근 밤 12시 퇴근' . 그녀는 고된 생활을 스스로 극복해 나갔다.

이 결과 그녀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들어도 제품상태를 훤히 꿰뚫을 수 있는 전문가가 됐다.

하루에 30개 정도의 중고 냉장고를 팔아 한달 평균 3천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수집상들이 대리점.주택가 등에서 폐기처리된 냉장고를 모아 그녀에게 전달한다. 2백90ℓ짜리를 기준으로 출시연도나 제품상태에 따라 3만~4만원씩 준다.

그녀가 직접 기계를 뜯어 내고 온도 감지기인 바이메탈, 온도 퓨즈, 타이머 등의 부품 교체를 한다.

반드시 새 부품을 쓰는 것이 權씨의 원칙. 때에 따라서는 모터 교체와 가스 주입도 필수다.

음식 찌꺼기가 낀 팬 모터나 냉동실 바닥 면의 물구멍 등을 분해하고 성에 제거도 한다.

색이 바랜 부분에 대한 라커 칠이 마지막 작업이다. 이렇게 해서 도매상들에게 판매되는 가격은 7만~8만원대. 노력의 대가로 거의 두 배 가치가 있는 상품으로 변신시키는 것.

"중고 판매점이면서도 우리집에서 산 물건은 신제품과 다름 없다는 신뢰를 심어준 게 성공의 비결입니다" . 그녀는 다음달부터 80평 규모의 대형매장을 연다.

오랜 고생의 보람을 찾게 된 것. 權씨는 이제 단순한 수리공을 벗어나 자원절약 실천가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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