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직전문기자 리포트] 그린벨트 해제 곳곳 '복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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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성역 (聖域) 벨트가 풀린다.

이제 그린벨트에도 70년대식 초법적 규제는 사라지고 대신 정상절차에 따른 권리가 살아난다.

구체적 계획 수립을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한 것도 민주적이다.

사상 처음 토지이용권에 대해 보상제도 (매수청구권) 를 넣는 등 건설교통부의 그린벨트 개선안에는 타 규제에 선례가 될 진일보한 토지정책수단이 다수 등장했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우선은 환경단체의 졸속 해제 주장이다.

그들이 아니라도 28년간 일관되게 지켜온 국토 5.4%에 대한 정책은 신중 또 신중했어야 옳았다.

과학적인 접근도 가능했다.

건교부는 이미 지리정보시스템 (GIS) 기법으로 14개 권역 토지의 실체를 파악했고, 마음만 있으면 전국 토지에 관한 정보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어디를 얼마나 풀면 주택.토지시장에 어떤 영향이 올지, 국토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시뮬레이션을 통해 그림으로 알기 쉽게 보일 수 있는 수준이다.

당국은 그러나 이를 게을리 한 채 지난 1년반 동안 어떻게 하면 전문성으로 포장할까 하는 형식에만 집착한 느낌이다.

그리곤 '60%는 보존될 것' 이라는 허구적 지표를 제시하며 해제 선포를 강행했다.

대부분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지금 허탈감에 젖어 있다.

도시계획 절차.관행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이제부터 새로운 다툼이 시작된다. 한 3년쯤 시끄러울 것" 으로 전망한다.

개선안이 총론만 제시했을 뿐 각론은 오리무중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개선안은 고무줄이다.

부분 해제하겠다는 7개 권역엔 '많이 풀 수도, 또 거의 안 풀 수도 있는 복선 (伏線)' 이 교묘하게 깔려 있다.

먼저 많이 풀 경우 인구 1천명 이상 취락을 우선 풀고, 환경평가 4.5등급 (그린벨트 면적의 15%) 은 모두, 3등급 (25%) 도 상당부분 해제할 수 있다.

그린벨트로 존치된다는 1.2등급 (60%)에도 방법은 있다.

취락지역은 건폐율을 40% (자연녹지 지역의 2배) 로 올려주고, 국공립공원.도시공원 .문화재보호구역. 생태계보전지역. 하천구역 등일 경우 그린벨트 면적에만 포함할 뿐 법 적용은 배제된다.

이처럼 차 떼고 포 떼면 순수 그린벨트는 농경지.산꼭대기 뿐이다.

특히 수도권은 이 기준에 따를 경우 큰 산 (국립공원 등).농경지 (김포평야 등).상수원보호구역 (하남시 등) 만 덩그러니 그린벨트로 남고 위성도시들은 얼마 안 가 서로 붙는다.

이 경우 부분 해제된 도시권의 '그린' 이 전면 해제 도시권보다 훨씬 적게 되는 기묘한 현상도 예상된다.

적게 풀 방법도 있다.

개선안에 숨은 '소요 도시용지가 가용 토지면적을 초과해야 한다' 는 단서를 이용하면 된다.

그린벨트가 아닌 곳에서 토지부족분을 해결할 수 있으면 4.5등급도 해제하지 않아도 된다.

건교부는 차후 도시별로 토지부족분을 따져보아 해제면적을 할당하겠다고 하지만 데이터 상으로는 가용토지가 부족한 도시권은 수도권 말고는 별로 없다.대부분 도시권은 가용토지가 기 개발지를 웃돌고 있다.

개선안의 개발이익 환수방안 정도로는 해제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갈지도 의문이다.

집 한채만인 지역 주민들은 용마루값 (이축권 프리미엄) 마저 날아가지 않을까 걱정해야 한다.

규제로 인한 희소가치가 없어지고, 토지공급은 늘어나 고대했던 장밋빛 개발도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대규모 토지소유자, 전체 그린벨트 면적의 44.5%를 가진 외지인은 다르다.

해제대상에 조금만 걸려도 큰 이익이다.

그동안 주민.환경단체가 다툴 때마다 이들은 뒤에서 웃었고, 이젠 땅값이 충분히 오를 때까지 기다릴 참이다.

혜택을 누가 받을지 쉽게 알 수 있는 정부가 투기조사 엄포만 놓는 것은 너무 구태의연하다.

이중 (二重) 규제지역이 더 즐거운 것도 문제다.

같은 그린벨트 내라도 상수도보호구역이면 주택신축이 가능하고, 도시공원일 경우엔 유흥촌도 들어설 수 있다.

그린벨트법은 이만큼 하위법 (下位法) 으로 전락했다.

준농림지의 경우 그린벨트와 경합하면서 체계적 개발은 아예 물건너 갔다고 봐야 한다.

지자체가 추진하던 기존개발사업도 차질이 불가피하고, 땅의 희소성만 믿고 적지가 아닌 곳을 개발하던 사람들의 원성도 서서히 높아진다.

국토는 단편적으로 볼 게 아니다.

14개 권역뿐만 아니라 전 국토 구석구석을 환경평가해 개발가능지.보존지역을 확연히 구분하는 토지이용 질서를 확립하는 게 시급하다.

음성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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