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옥중결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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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바스티유는 성채 (城砦) 를 뜻하는 프랑스어 보통명사다. 14세기때 파리 동쪽에 세워진 한 요새가 '바스티유' 란 고유명사로 불리면서 감옥으로 변신한 것은 루이 13세때였다.

이곳은 아직까지도 전세계에 '무시무시한 감옥' 의 전형처럼 인식되고 있으나 1세기 남짓한 바스티유 감옥의 역사를 통틀어 실제 수감자들의 대부분은 귀족 등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물론국사범 같은 중범죄자들도 수감돼 있긴 했지만 그들과는 달리 귀족 수감자들의 옥중생활은 무척이나 자유로웠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바스티유에 들어온 귀족들은 감옥 안에서도 자유롭게 행동했을 뿐만 아니라 바깥출입은 물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언제든지 만날 수 있었다고 하니 이쯤되면 '죄수' 가 아닌 '손님' 이라고나 해야 할까. 은신처 삼아 들어온 '현직' 의 귀족들은 아마도 바스티유 감옥을 '제2의 집무실' 로 생각했을는지 모른다.

프랑스혁명의 발단이 된 1789년 7월 14일 파리 시민의 바스티유 감옥 탈취때 수감자는 위조지폐범 4명과 정신병자 2명, 그리고 위탁 감금된 귀족의 건달자식 1명 등 모두 7명뿐이었다는 점, 그리고 반정부.반권력의 기치를 높이 든 문필가와 출판업자들이 수십년간의 단골 수감자들이었다는 점이 바로 바스티유 감옥의 상반된 두 모습이었던 것이다.

프랑스의사상가 미셸 푸코가 인간사회에 있어 감옥제도가 실패를 거듭해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타당한 일면이 있다. 곧 감옥제도란 부와 권력과 정치적 힘을 지니면서 자신의 권리보호에 늘 신경을 쓰는 교육받은 상류계급을 위한 것이었으며, 따라서 감옥은 한마디로 '범죄를 제거하는 데 실패했다기보다는 비행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는 것이다.

권력층과 상류층의 부정과 비리가 끊일 새 없어 그들의 교도소 출입이 빈번한 우리나라는 어떨까.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지만 고위층 수감자들이 일반 수감자와 똑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구속 수감된 경기도지사의 옥중결재 문제만 해도 그렇다.

얼마전 행정자치부는 구속 중인 지방자치단체장의 '옥중결재 금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마련하기도 했으나 흐지부지된 채 검찰은 경기도지사의 옥중결재를 허용키로 했다 한다.

아직 재판도 받지 않았다는 등 할 말이야 많겠지만 국민과 도민의 정서가 '바스티유의 귀족' 을 떠올리지나 않을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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