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돈의 뉴욕뉴욕] '케네디사랑' 미국인들의 속마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케네디 2세의 사고소식에 미국의 주요 TV채널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특별 생방송을 내보냈다. 그리곤 며칠째 오래된 자료화면을 되풀이 방영하며 특집방송을 계속하고 있다.

신문도 예외가 아니다. 몇몇 신문은 호외까지 발행했고, 연일 케네디가의 번영과 비극을 지면 가득 장식하고 있다.

케네디 2세 부부가 살던 맨해튼의 아파트 입구는 꽃과 촛불을 손에 든 인파로 북새통이다.

마치 국상이라도 당한 듯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있는 분위기다. 실제 시사주간지 타임은 케네디 2세를 미국인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었던 '왕자' 로 묘사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까지 나서 특별성명을 발표하고 케네디 2세와 그 아내, 그리고 가족 모두를 위해 다 함께 기도하자고 호소했다.

케네디가에 모아지는 미국인들의 이같은 사랑과 관심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케네디가의 잇따른 사고는 가문의 화려한 영광과 맞물려 충격적이고 극적인 것만은 틀림없다.

워싱턴포스트지는 "미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야망과 부, 권력과 섹스, 사랑과 죽음 등이 가득한 희곡을 썼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미국이 송두리째 케네디 2세의 죽음에 몰두하는 모습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그의 아버지 케네디 대통령이 집권 당시 펼쳤던 대내외 정책에 대해선 미국인 스스로 높이 평가하지 않는 편이다.

숨겨졌던 그의 염문을 비롯, 마약.엽색행각 등 케네디 가문에서 들려오는 숱한 부도덕성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케네디가를 외면토록 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도 오히려 식지 않는 미국인들의 케네디 가문 사랑, 이 현상을 '대리만족' 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케네디가 사람들의 화려한 삶이야말로 미국인들이 갖고 싶어하는 가장 미국적 삶이란 설명이다. 어떤 이는 '집단적 결핍감' 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미국은 역사도 짧고 왕실도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세계 초강대국이 되었다. 미국인들은 케네디가에 왕관을 씌워 자신들이 이룬 모든 것을 자축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신중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