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신문고] 병역특례자 轉職규제 푸나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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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기공학을 전공한 전문연구요원 이주석 (26.서울 금천구 가산동) 씨는 올해 초 넉달 동안 D전자와 병무청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개정된 법조항만 믿고 순진하게 직장을 바꾸려 했다가 원하는 벤처기업에 가지 못한 것은 물론 원래 직장에서도 눈총을 받는 '샌드위치'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족쇄 풀 열쇠가 생겨도 풀어줄 담당 공무원이 요지부동이면 달라질 게 없다' 는 경험법칙을 몰랐던 게 화근이었다.

병무청은 지난해 10월 병역법 시행령을 바꿔 병역특례자인 전문연구요원이 벤처기업으로 옮길 때는 기존직장 근무기간이 2년이 안되더라도 6개월 이상이면 가능토록 했다.

규제완화 차원에서 '2년 근무 후 전직' 이라는 족쇄를 푼 것이다.

첨단기술을 지닌 병역특례자들에게 새 직장을 고를 기회를 주고, 벤처기업에 인재를 바로바로 공급하자는 취지에서다.

개정법령이 지난해 말 시행되자 李씨는 날 듯이 기뻤다.

지난해 5월 D전자에 병역특례자로 입사했던 그는 전직 (轉職) 을 결심했던 터였다.

대기업보다 작지만 유망한 벤처기업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마음껏 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 지난 1월 16일 모교를 방문했다가 한 벤처기업이 李씨가 전공한 분야의 사람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李씨는 며칠 뒤 그 벤처기업과 접촉해 입사를 합의했다.

그리고 자신이 다니던 D전자에 전직의사를 통보했다.

하지만 D전자는 '기술이 유출되기 때문에' 다른 회사엔 절대로 보낼 수 없다고 맞섰다.

당황한 李씨는 개정 법령에 관해 서울지방병무청에 물었다.

병무청 관계자는 "D전자의 전직 승인을 받아오라" 고 요구했다.

그러나 D전자는 병무청에 소견서까지 내면서 계속 반대했다.

李씨가 서울지방병무청에 다시 유권해석을 구하자 담당자는 "정 안되면 D전자의 전직승인이 없어도 벤처기업 확인서 등 가능한 서류를 구비해오면 해결해 주겠다" 고 했다.

하지만 서류를 제출한 뒤에도 병무청에선 시간만 끌 뿐 확실한 조치를 안해줬다.

한달쯤 지난 4월 1일, D전자 인사담당자가 찾아왔다.

그는 "어떻게 이런 상태까지 왔느냐. 6개월만 지나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 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서울지방병무청도 "D전자안을 따르는 게 좋겠다" 고 설득해 왔다.

그런 과정에서 李씨는 "D전자와도 풀기 힘든 감정의 골이 생겼고 옮기려는 벤처기업에도 누를 끼친 것 같아 정말 괴로웠다" 고 한다.

李씨가 입사하려던 벤처기업은 D전자의 거래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지방병무청만 믿어선 안되겠다고 판단한 李씨는 4월 대전에 있는 병무청 본청에 인터넷으로 민원을 제기했다.

병무청 산업지원과의 해석은 명쾌했다.

당연히 전직이 가능하다는 것. "지방병무청은 전직을 원하는 병역특례자가 원래 있던 직장의 '의견' 만 들으면 되지 '동의' 까지 얻을 필요는 없다" 는 얘기였다.

또 사실확인이 어려우면 지방병무청에서 실사를 나가 어느 쪽의 말이 옳은지 확인한 뒤 전직시켜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병무청이 서울지방병무청에 시정을 지시하자 담당자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D전자 역시 문제가 발생할까 우려해서인지 李씨에게 합의문을 써달라며 적극적으로 나왔다.

李씨의 불만. "법령이 바뀌었는데도 4개월이나 질질 끌다 민원을 정식으로 제기하니까 그때서야 움직인다면 도대체 법이란 게 뭐고 규제개혁이란 게 뭡니까. 대기업이 낀 일이라 그런 건가요. "

기획취재팀 = 하지윤.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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