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안된 과거사 日징용 유해] 선진국의 유해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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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부산 유엔군 묘지에는 영국군 유해 (8백84구)가 가장 많이 묻혀 있다.

영국은 해외에서 전사한 병사의 현지 매장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대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마다 전적비를 세우고 성지로 만든다.

영국 여왕이나 총리는 외국을 방문할 때마다 영국군 병사가 묻혀 있는 묘지에 들러 헌화하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반면 미국은 유해반환에 적극적이다.

최근에는 정부 산하에 해외에서 전사한 미군유해 발굴과 반환을 전담하는 별도의 조직까지 설치했다.

서해안에서 남북한 함정이 대치했던 지난달 18일, 판문점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실종된 미군유해 4구를 반환받기 위해 유엔군사령부 관계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북한의 유엔군 유해반환은 90년 5구가 반환된 이래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1만여구로 알려진 유엔군 유해 가운데 8천여구가 아직 군사분계선 북측지역에 있는 것으로 추정하며 유해가 모두 송환될 때까지 북한측과 접촉할 계획이다.

베트남과 수교하기 전에 미국이 가장 먼저 요구한 것도 베트남전에서 숨진 미군유해 반환이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25년이 지난 지금도 월남.라오스.캄보디아.태국에 '미군 실종자 수색사무소' 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정글을 누비며 미군이 남긴 유류품을 뒤져 시신을 발굴해낸다.

미국은 유해반환이라면 예산을 아끼지 않는다.

지난 93년 미국은 북한에서 49구의 시신을 넘겨받는 대가로 89만7천달러를 지불했다.

94년 미군헬기가 북한지역에 불시착하자 미국은 한국을 따돌리고 수교관계가 없는 북한과 판문점 군사정전위 회의실에서 직접 접촉하기까지 했다.

미국은 유해가 송환되면 전국민이 따뜻하게 환영한다.

의장대의 사열 속에서 국립묘지에 장군.영관급 장교들과 함께 묻힌다.

자국민의 유해반환에 적극적이기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의 섬과 인도차이나 반도.중국 대륙에서 숨진 유해는 후생성 등 정부와 민간단체의 주도로 발굴 즉시 본국으로 송환한다.

또 패전 직후 옛 소련군에 의해 시베리아로 끌려가 사망한 일본인들의 유해도 계속 발굴돼 반환되고 있다.

일본 후생성은 최근 시베리아 등 해외 전몰자 유골을 수습할 때 유전자 (DNA) 감정에 의한 신원확인을 위해 유골의 일부를 화장하지 않고 감정용으로 보존키로 했다.

그동안에는 유품이나 매장지역.매장상황 등만을 근거로 신원을 확인해왔다.

따라서 정확하게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가 34만6천여명에 달하고 있다.

후생성은 유족들이 DNA감정을 요구하고 기술 진보에 따라 수십년이 지나도 유골로 신원 확인이 가능해지자 화장으로 인한 DNA 파괴를 막기 위해 일부를 남겨 가져오도록 한 것이다.

감정에 소요되는 비용 (최고 20만엔.약 1백93만원) 은 앞으로 예산을 지원해 국가가 부담할 것을 검토 중이다.

이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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