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직인선 뒷얘기] 힘실린 당, 김실장에 한판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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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2일 단행된 국민회의 지도부 인선은 김대중 대통령의 체취가 물씬 풍긴다.

청남대 (靑南臺.대통령 전용 휴양시설)에서의 4일간 장고 (長考) 를 거치면서 金대통령은 새로운 인사 스타일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 11일의 심야 (深夜) 결심과 충성도 = 金대통령이 이만섭 고문을 낙점한 시점을 놓고 여러가지 얘기가 있으나 11일 밤 늦게 결심했다는 게 동교동 핵심 관계자의 전언이다.

당초 청남대 인선 구상에 올라간 총재권한대행 후보는 이만섭.김원기. 조세형 고문과 이종찬. 한광옥. 장을병 부총재 등 6명. 이중 막판까지 경합했던 인물이 이만섭.김원기.조세형 고문이다.

장을병 부총재는 당 장악력의 어려움을 들어 초기에 탈락했고, 한광옥 부총재는 대야 관계 측면에서 밀렸다.

이만섭 고문은 JP와의 껄끄러운 관계탓에 여권 내부에서도 가능성을 크게 보지 않았다.

때문에 이만섭 고문의 대행 임명은 '허 (虛) 를 찌른 카드' 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만큼 청남대 구상을 놓고 여권 주변에서는 엎치락 뒤치락했다.

金대통령이 최종 고심했던 대목이 충성도였다고 한다.

실제 金대통령은 12일 李대행을 청와대로 부른 자리에서 "언론에 (李대행이) 충성도가 가장 낮은 걸로 나와 있어 할까 말까 망설였었다" 고 '뼈있는 농' 을 건넸다.

당에 돌아온 李대행은 이를 의식한듯 "입당파 중에선 내가 제일 충성심이 높다" 고 강조했다.

◇ 철통 보안 = 李신임대행이 청와대에서 金대통령을 만나고 있던 시간 (12일 오전 9시)에도 청와대와 당에선 '모르쇠' 로 일관, 보안에 철저를 기했다.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한길 정책기획수석이 당 8역 선임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당사를 방문한 9시40분쯤에 맞춰 신임 대행 인선을 발표하는 등 대외비 (對外비) 유지에 신경을 썼다.

이처럼 보안에 비중을 둔 데는 지난 5.24 개각명단이 일부 언론에 새나오면서 개각 의미가 평가절하됐다는 내부 지적에 따른 것. 이를 의식한듯 金대통령은 청남대에 머무른 3일 동안 김중권 실장과 몇차례 전화통화를 했을 뿐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구상에만 몰두했다.

李대행에게도 청남대를 떠나기 전인 오전 7시15분에야 서울 북아현동 자택에 전화를 걸어 임명 사실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金실장조차 이날 아침 李대행 낙점 사실을 알았을 정도였다.

여권 관계자는 "YS시절 인선 보안의 긍정적 측면을 살린 것 같다" 고 자평.

◇ 힘 못쓴 청와대 건의안 = 李대행 임명을 놓고 국민회의쪽에선 "청와대 완패, 당 완승" 이라며 기분 좋아한다.

대행후보로 조세형.김원기 고문, 한광옥 부총재 추천보고서를 올린 청와대쪽 의견이 묵살됐다.

반면 당, 특히 동교동계가 올린 '이만섭 카드' 가 수용됐기 때문. 실제 청와대 참모들은 자신들로선 '의외의 낙점' 에 당황한 모습이 확연했다.

당 일각에선 "金대통령이 당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은 청와대 주도로 국정을 운영해온 스타일을 바꾸겠다는 뜻 아니냐" 며 기대를 나타냈다.

李대행을 적극 민 것으로 알려진 권노갑 (權魯甲) 고문은 "당직개편이 아주 잘 됐다" 며 "어려운 일을 잘 풀어나갈 수 있도록 같이 잘 해보자" 고 환영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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