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과거사 청산 제안 협소한 정치적 이해서 비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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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 타임스는 '아시아 역사의 활용과 남용'이라는 23일자 사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과거사 청산 제안은 협소한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나온 것"이라며 "이를 철회하거나 아니면 현대 산업국가로 탈바꿈했던 한국의 고통스럽지만 타의 모범이 된 과정을 솔직하게 되돌아보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사설 요지.

과거를 돌이켜보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것은 원론적으로 보면 훌륭한 생각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과거사 재조명 계획이 그렇게 보이길 원할 것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과거사 청산에서) 한국은 이미 동북아시아의 이웃 국가들보다 더 잘해 왔다. 1996년 '세기의 재판'을 통해 80년대 한국의 부패와 권위주의가 밝혀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는 22년형이 선고됐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전후 아시아에서 저지른 만행의 진실을 아직 밝혀야 한다.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은 기아와 잔혹한 행위로 수백만명을 사망하게 한 마오쩌둥의 책임을 아직 명백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해 친일파를 밝혀내고 현대사를 재조명하자는 노 대통령의 제안은 모범적인 개방성으로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좌파 성향의 노 대통령은 보수 야당의 명예를 실추시키기 위한 노골적인 시도가 아니라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주지 못했다.

한나라당은 이러한 과거사 재조명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표에 대한 마녀사냥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일부 한국인은 18년 동안 집권한 박 전 대통령을 현대 한국의 국부로 여긴다. 그러나 그는 일본군 장교로도 복무했고, 집권시절에는 반대세력을 탄압했다. 이 논란은 보수와 진보라는 세대 간의 깊은 갈등을 나타내 준다.

박 대표는 보수주의자뿐 아니라 공산주의를 지지하거나 북한의 공산 독재 정권을 도운 사람들도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응답은 현명하고 또 공정하다.

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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