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폐기 외 다른 협상 없다” … 외교부, 대북 그랜드바긴 설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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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그랜드바긴의 핵심은 핵무기와 핵물질을 앞당겨 폐기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빼고 노후 핵시설이나 냉각탑을 해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핵심적 부분에 대한 이행 방안이 빠진) 2·13 합의로 되돌아가는 협상은 하지 않겠다.”

북핵 현안에 정통한 외교통상부의 고위 당국자가 28일 새로운 북핵 해법으로 제시된 ‘그랜드바긴’(일괄타결) 방안의 윤곽을 설명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종래의 6자회담 합의사항인 2007년 2·13 합의와 10·3 합의에 대해 “굳이 배척할 것까지는 없다”면서도 “돌이켜보면 없던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한·미를 비롯한 관련국들이 마련 중인 새로운 북핵 해법의 기본 철학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2·13 합의는 북핵 문제에 대한 단계적·점진적 해법을 추구한 부시 행정부 말기에 나온 6자회담의 대표적 성과물로, 영변 원자로와 재처리시설 등의 중요 부품을 제거해 가동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이른바 ‘불능화’ 조치를 말한다. 하지만 북한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원상복구 조치를 할 수 있는 ‘가역적’(되돌릴 수 있는) 조치였다.

정부 당국자는 거슬러 올라가 2005년 6자회담의 성과물인 9·19 공동선언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합의문에는 ‘비핵화’란 원칙만 담았을 뿐, 구체적인 이행 계획이 빠져 있어 그 이후 후속 협상에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9·19 선언에서 불능화 합의인 2·13 불능화 합의가 나오기까지는 1년 반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이후에도 북한은 2007년 말까지 불능화를 끝내고 이듬해부터 3단계 협상(핵 폐기 협상)에 들어가기로 한 약속 이행을 여러 차례 지연시켰다.

북한이 한편으론 불능화 합의를 이행하는 척 하면서 시간을 끌고, 다른 한편으론 비밀 핵 개발을 계속해 왔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고위 당국자가 “살라미 전술에 악용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보는 이유다.

한·미가 마련 중인 새 해법은 이 같은 과거의 협상 패턴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새로운 합의문에는 비핵화에 필요한 조치의 처음부터 끝까지(a에서 z까지)를 총망라해야 한다”며 “한번 합의문이 작성되면 더 이상의 후속 협상이 필요 없을 정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핵심은 핵무기, 물질을 비가역적으로 폐기하거나 국외로 반출하는 것인데, 북한이 이 조치를 앞당겨 시행하면, 그에 상응하는 안전 보장, 경제 지원 등의 중대한 보상 조치도 앞당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자바오 총리 4일 방북=북한 조선중앙방송은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다음 달 4일부터 6일까지 북한을 공식 친선 방문한다고 28일 보도했다. 원 총리의 방북은 올해 초 베이징에서 열린 양국 수교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김영일 북한 총리의 답방으로 예정돼 있었으나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때문에 무기 연기됐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다음 달 10일 베이징에서 원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와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한다고 청와대가 발표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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