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성] 맹렬 인권운동가 재일동포 3세 신숙옥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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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요즘 일본에서 가장 활동적인 인권 전문가로 주목받는 인물은 뜻밖에도 한국 여성이다. 재일동포 3세 신숙옥 (辛淑玉.40). 지난달 21일엔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NHK의 논평 프로그램 '시점.논점' 에 출연했을 정도다. 정연한 논리와 능란한 말솜씨는 방송인도 혀를 내두른다.

일본의 각 분야를 누비는 쟁쟁한 동포는 한둘이 아니지만 그녀만큼 활동폭이 넓은 이는 드물다. 본업은 인재육성 컨설턴트지만 여러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평론가.칼럼니스트.작가.시민운동가 등등. 유력 신문과 잡지에 칼럼을 내고 TV 방송 토론은 단골역이다.

지금까지 낸 책만도 '불유쾌한 남자들' '한국.북한.재일코리아사회를 이해하는 책' 등 8권. 칼럼이나 책의 일관된 주제는 인권 문제다. 국적.성.장애.병의 벽을 넘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한 몫 하겠다는 것이다.

인권 문제에 대해선 행동파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지난 1일에는 지식인들이 통신감청법안 반대 회견을 갖는 자리에 홍일점 외국인으로 끼었다.

"재일 한국인이 일본 정부에 대놓고 이러쿵 저러쿵 한다고 일부선 못마땅해요. 일본이 싫으면 떠나면 되지 않느냐고요. 하지만 인권 문제가 있는 곳은 어디든지 달려갑니다. " 무엇보다 국적 차별에 대해선 반골 기질이 짙게 배 나온다.

'재일' 이 잉태한 원죄 때문 같다. 그녀는 "사람은 태어난 곳에서 살고 죽을 권리가 있다" 며 "재일동포가 아니면 이 문제를 피부로 느끼지 못할 것" 이라고 강조한다.

96년 외국인으로 도쿄 (東京) 도의 기획심의실 위원으로 위촉돼 정주외국인의 참정권 문제를 부각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성.장애 문제는 회사를 상대로 한 업무이기도 하다. 92년에는 에이즈 환자 처우 등을 알아보러 미국을 다녀오기도 했다.

쓴 감투도 수두룩하다. 가나가와 (神奈川) 현의 인권계발추진위및 에이즈문제전문가회의위원, 도쿄도 생애학습심의위원을 맡고 있다.

"컨설팅에다 강연, 기고, 방송 출연을 하다 보면 하루 평균 4시간밖에 못 자지요. 그래서 교통기관을 이용할 때마다 눈을 붙여요. " 그녀는 "여자와 재일 한국인으로서 보통 일본 남자보다 4배 이상 노력하지 않으면 그들과 대등해질 수 없다" 고 말한다.

辛씨는 정규학교는 어디도 졸업하지 못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불우한 가정 환경으로 소학교를 2년새 5번이나 전학하기도 했다. 10대때 모델 아르바이트를 하다 유력 광고회사에 들어간 것이 20세.

회사 재직 때는 "죽을 정도로 공부를 했다" 고 한다. 그리고 약관 26세 때 현재의 인재육성 컨설팅사인 고가샤 (香科舍.자본금 1천5백억엔) 를 세웠고 회사가 반석에 오르면서 활동의 지평을 하나둘씩 넓혔다. 그녀의 끝없는 일 욕심은 돌아갈 마음의 고향이 없는데서 오는지도 모른다.

도쿄 = 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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