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조업 '팔수록 밑져 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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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수요는 살아나는데 이젠 값이 문제. " 제조업체들이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국내외 경기가 회복조짐을 보이면서 주문이 늘어 가동률은 높아졌는데 이번에는 가격과 채산성에 문제가 생긴 것.

특히 수출의 경우 지난해 환율이 급등하자 단가를 많이 깎아준 것이 이제는 '제살 깎아먹는 결과' 를 초래했다. 게다가 원자재 값이 오르는 반면 아직 국내 판매가를 높일 형편은 아니라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팔고 있다.

한 시멘트 업체 관계자는 "국내외에서 주문은 꽤 들어오는데 제값을 못받아 걱정" 이라고 털어놓았다.

◇ 채산성이 최대 고민 =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1천9백93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3분기의 최대 경영애로가 무엇인가' 를 물은 결과 '판매가격 하락' 이 20.6%로 으뜸을 차지했다.

그동안 압도적으로 높았던 '내수부족' 은 15.2%로 2위로 떨어졌다. 다음은 자금부족.환율변동.원자재가격 상승 등이 뒤를 이었고, 수출부진 (4.9%)에 대한 걱정은 맨뒷전으로 밀렸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최근 1년여 동안의 조사에서는 응답업체 5개 중 2개꼴로 '내수부족' 의 고충을 최우선으로 꼽았으나 올 하반기부터 '판매가격 하락' 이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것.

특히 판매가 하락을 가장 심각하게 우려한 업종은 ▶전기기계 ▶운송장비 ▶화학 등이었다. 대한상의 이현석 경제조사실장은 "숨통을 죄었던 재고누적이 상당부분 해소되면서 이제 기업들이 채산성에 눈돌릴 여유를 찾았다는 증거이긴 하지만 3분기를 기점으로 수출단가 하락 등에 따른 채산성 악화가 우려된다" 고 말했다.

◇ 팔수록 밑진다 = 전형적인 내수업종인 시멘트 업계는 과잉설비를 놀릴 수 없어 올들어 앞다퉈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지만 팔수록 밑지는 장사여서 울상이다.

양회협회가 집계한 올 상반기 시멘트 수출물량은 지난해의 2.5배에 달하는 2백70만t. 하지만 값은 엉망으로 일반 시멘트의 경우 t당 16~17달러로 국내가격 6만원 (50여달러) 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H시멘트의 한 임원은 "해외시장에서 동남아산 시멘트가 덤핑을 일삼아 고정비만 간신히 건지는 선에서 출혈수출을 감수하고 있다" 고 말했다.

직물 수출업체인 나이스텍스 임형택 부장은 "특히 중소업계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환율상승으로 가격 경쟁력만 믿고 바이어들에게 수출단가를 지나치게 깎아줬다가 고생을 자초했다" 고 지적했다.

최근 원화 가치가 달러당 1천1백원대로 높아졌는데도 수출가는 원상회복되지 않아 채산성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것.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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