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재도전] 2. 인도네시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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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자카르타 도심 스나얀 거리의 최고급 쇼핑가 스나얀 플라자. 40년만의 민주총선이 끝난지 사흘만인 지난 6월 10일, 평일 낮시간인데도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지나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쇼핑객이 넘친다.

이탈리아제 고가 수입의류에서 생필품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다.

플라자 내에서 가장 비싸다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매장에 근무하는 데위 (24) 양은 "3~4개월 전만 해도 한달에 손님 네댓명 들르는 게 고작이었는데 지난달부터 손님이 확 늘어나 요즘은 매일 2~3벌 정도는 판다" 고 귀띔했다.

'부르사 에펙 자카르타 (자카르타 증권거래소)' .요즘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바쁜 곳이다.

6월 11일, 오후장이 막 시작된 2시40분. 1천평 규모의 객장은 6백여명의 '플로어 트레이더' 들이 지르는 고함소리와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증권시장의 후스눌 안와르 대외사업국장 (48) 은 "선거 다음날 (8일)에는 하루 거래액이 3조루피아 (약 6천억원) 까지 치솟았다.

한창 때인 95년에도 없었던 일" 이라며 최근 활황세를 소개했다.

이날 현재 주가지수는 672.주가가 300선을 밑돌던 것이 불과 2개월전 일이다.

한국 증시를 능가하는 대단한 열기다.

태국의 위기발생 한달만인 97년 8월 3일, 루피아화 폭락 이후 폭동과 수하르토 대통령의 하야 등으로 총체적인 위기에 빠졌던 인도네시아가 민주총선을 계기로 회복길에 들어서고 있다는 신호탄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자카르타 동부 타나아방 거리에 자리잡은 유력 민간연구소인 국제경제문제연구소 (CSIS) 소장 판데 라자 실라라히 박사는 "물론 아직도 문제는 많지만 병세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 시그널" 이라고 분석했다.

기업활동도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지난해 34%에 불과했던 제조업 가동률은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조금씩 오르고 있다.

발길을 끊었던 외국인들도 다시 찾고 있다.

삼성물산의 김수현 (金秀顯.37) 자카르타 지점장은 "14명이던 직원을 지난해 3명까지 줄였지만, 인도네시아 경제가 기지개를 켜는 것으로 판단해 지점을 다시 늘릴 것을 검토중" 이라며 "일본 등 다른 기업들도 비슷한 상황" 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자카르타가 벌써 '한낮' 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외채는 아직도 1천4백억달러에서 요지부동이고, 60%를 돌파한 실업률은 내려올 줄 모른다.

올해초 70%까지 치솟은 인플레도 아직 30%대에서 맴돌고 있다.

중앙은행인 인도네시아은행 (BI) 은 올해 인플레 목표를 45.9%로 잡았을 정도다.

가장 큰 문제는 부실채권비율이 60%대인 은행의 구조조정. 인도네시아은행의 수바르조 조요수마르토 부총재는 "은행문을 닫게 할 것인지, 돈을 넣어 살릴 것인지, 팔아치울 것인지는 철저하게 자생력과 시장성으로 판단할 것" 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거 인도네시아 경제의 발목을 잡았던 족벌주의.공모.부패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되살아날까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않다.

남은 정치일정도 변수다.

총선은 무사히 넘겼지만 대선이 문제다.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분리독립운동.인종간 갈등.종교분쟁 등 암초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막 회복실로 옮겨진 중환자' - .인도네시아의 요즘을 나타내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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