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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457.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제10장 대박

한철규로선 최소 단위의 위협이었지만 배완호는 당장 기가 질려 버렸다. 실제로 한철규는 섣불리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갖춘 인물처럼 보였다. 유연한 것처럼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그는 매우 위압적이었고, 줏대가 있어 보이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을 함부로 예단하지 않는 진중함이 엿보이기도 했다.

눈치 빠른 배완호는 어느새 그의 충실한 시위자 (侍衛者) 로 돌변하고 말았다. 한철규를 반발짝쯤 뒤따르면서 선착장 들머리에 자리잡은 서문식당을 허리 조아리며 가리켰다.

멀리서 보아도 식당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한산했다. 새우잡이 한물이 지나면 곧바로 꽃게잡이 철인데도 부두에 있는 횟집 난전에서는 품귀현상인 것을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다. 물론 꽃게잡이 역시 끝물에 다가섰다지만, 소매가격이 지난해에 비하면 엄청나게 비쌌다.

흔전이어야 할 꽃게가 안면도에서조차 품귀현상을 빚게된 것에는 물론 이유가 있었다. 중국 통발어선들의 횡포에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동중국해와 양쯔 (揚子) 강 하구 해역의 꽃게어장을 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한국 통발어선들은 그 부근 공해에서 연간 8백억원의 매상을 웃도는 값어치의 꽃게를 잡아 왔었다. 그러나 근래에 이르러 중국 어선들은 백여척 혹은 2백여척이나 되는 대선단을 이루어 시위식 조업을 하면서 꽃게들을 싹쓸이해 갈 뿐만 아니라, 한국 어선들이 쳐 놓은 통발을 의도적으로 훼손하거나 어획물을 강탈해 가고 있었다.

그뿐 아니었다. 중국의 공안선들은 공해에서 조업중인 한국 어선을 가차없이 나포하기도 했다. 위협을 느낀 한국 어선들은 꽃게 황금어장에는 범접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러자 양쯔강 하구에서 조업하던 한국의 통발어선들은 북상하여 태안반도 앞바다로 쫓겨나 조업하거나 출어 자체를 포기한 어선들도 부지기수였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 조업 해역에서 잡힌 꽃게의 유통경로였다.

한국 어선들을 내쫓고 조업해서 거둔 꽃게와 한국어선들이 쳐놓은 통발을 빼앗아 거둔 중국산 꽃게를 다시 한국에 팔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북한이 연평도 해역에서 잡은 꽃게 역시 중국을 거쳐 국내로 반입되어 한국의 시장에서 팔리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북한 어선이 연평도 부근 해역에서 뱃전에 배가 올라타고 경비정이 격침되는 아수라와 수모를 겪어가며 잡은 꽃게들도 중국을 거쳐 한국 어물시장에 반입되고 있었다.

그들 중국산과 북한산은 한국 어선들이 태안반도 부근 해역에서 감질나게 잡아올린 꽃게들과 뒤섞여 어물시장에서 팔리고 있었다. 꽃게 때문에 총탄이 날아가고 경비정이 격침되어 사태가 전면전 일보직전까지 치달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보복을 장담하였기에 꽃게를 먹는 심정이 씁쓸하고 애꿎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북한산 꽃게들이 한국 어물시장에 반입되고 있으므로 꽃게값의 폭등을 막아 주고 있다는 것도 현실로 존재하고 있었다.

때깔이나 크기에 눈썰미를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유통경로를 꿰고 있지 못하면 육안으로는 출처를 식별해 낼 재간이 없는 그 꽃게들이 만약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물시장 아낙네가 난전에서 팔고 있는 꽃게 함지박에선 꽃게들끼리 주고받는 중국말과 황해도 사투리와 충청도 사투리가 뒤섞여 몹시 시끄럽고 난삽할 게 틀림없었다.

꽃게잡이 어선들의 조업을 보호하겠다는 빌미로 젊은이들의 목숨까지 잃게 만든 그 북한의 꽃게가 잡혀선 중국을 통해 남한에 반입되고 있다는 것을 미묘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서문식당을 찾아갔던 배완호가 다가와 옆구리를 툭 건드렸다.

"박씨 처형되는 분을 어렵게 찾아냈습니다. 가게문은 닫고 이웃에 가 있었어요. " 배완호를 따라 서문식당으로 들어섰다. 식당업을 걷어치운 징후는 발견할 수 없었지만, 역시 밖에서 힐끗 보았을 때처럼 술청은 음식 냄새조차 없을 정도로 썰렁했다. 꽃게잡이가 한물 가면서 안면도를 찾는 관광객들의 수효도 부쩍 줄어든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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