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유죄' 6년만에 승리…'우조교에 500만원 배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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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 93년 성희롱의 법적 책임을 놓고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시작됐던 '서울대 우 (禹) 조교 성희롱 사건' 의 법정공방에서 6년 만에 禹씨측이 사실상 승리를 거뒀다.

서울고법 민사1부 (재판장 洪日杓부장판사) 는 25일 서울대 전 조교 禹모 (30.여) 씨가 서울대 교수 申모 (57) 씨를 상대로 낸 5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항소심에서 "申씨는 원고 禹씨에게 5백만원을 지급하라" 는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국내 최초로 제기됐던 직장내 성희롱 소송에 대해 법원이 직장 상사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은 것이어서 향후 이를 둘러싼 다툼에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이 외부에 알려진 것은 93년 8월. 92년 조교였던 禹씨가 申교수로부터 함께 입방식을 하자는 제의를 받는 등 성희롱을 당했다는 내용의 대자보가 대학 구내에 나붙었다.

申교수는 명예훼손으로 禹씨를 고소했고 禹씨도 소송을 내 법정공방이 시작됐다.

94년 4월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1심인 서울지법은 "직장내 근로자의 지휘.인사권을 갖고 있는 상사가 성과 관련된 언동으로 불쾌한 성적 굴욕감을 느끼게 한다면 법률상 책임을 져야 한다" 며 3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묵인돼 왔던 성희롱 관행에 대해 처음으로 법적 책임을 물은 것이다.

그러나 95년 7월 서울고법에서 판결이 뒤집히며 논란이 다시 시작됐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성희롱의 범위를 엄격히 봐야 한다며 申씨의 행동에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밝혔다.

여성단체들은 즉각 시대착오적 판결이라며 강력 반발했고 사건은 대법원으로 이어졌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성희롱의 개념을 재정의, "상대방의 인격권과 존엄성을 훼손하고 정신적 고통을 주는 정도라면 위법" 이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그 사이 정부는 직장내 성희롱 방지지침까지 내놓는 등 사회적 분위기도 바뀌었다.

결국 25일 서울고법은 禹씨의 주장 중 일부를 인정, "피고가 재임용 추천권한을 이용, 계속적으로 성적 의도를 드러낸 언동을 했으며, 이는 사회 통념상 허용되는 단순한 농담이나 호의적 언동의 수준을 넘어섰다" 고 성희롱 책임을 인정했다.

대법원의 재상고심을 남겨놓고 있지만 이번 판결이 대법원 판결 취지를 따른 것이어서 禹씨는 사실상 최종 승리를 거둔 셈이다.

여성단체협의회 오순옥 (吳順玉) 출판홍보부장은 "배상 액수가 적은 감이 있지만 법원이 우리 사회에 만연된 성희롱 문제의 심각성을 판결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긍정 평가한다" 고 밝혔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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