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뉴스] 고소·고발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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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주먹이 앞선 때가 있었습니다.
목소리 크고 힘센 사람이
모든 걸 장악하던 시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이를 넘어서기 위해
사람들은 머리를 맞댔습니다.
"주먹이 아닌, 총칼이 아닌
이성적인 해결방법을 만들자."

눈을 가린 채 한 손에 저울을,
한 손에 칼을 쥔 여신의 힘은
이 세상에서 다툼을
없애주리라 믿었습니다.

"법대로 합시다"
사람들은 주먹 대신
법에 의지합니다.

법이 지배하는 사회,
옆집에서 큰소리 한 번 나도
사람들은 법에 묻습니다.
친구와 술 한잔 먹고서도
사람들은 법을 찾습니다.
빌려준 돈을 빨리 달라며
돈 없어 휘청거리는 친척을
법 앞에 세웁니다.

2002년 58만5930건
2003년 64만3012건.
해마다 늘어나는 고소와 고발.
주먹이 사라지긴 했지만
대화와 악수도
자꾸 멀어져만 갑니다.

얼굴을 조금만 더 맞대도
말 한마디만 더 해도
악수 한 번만 청해도
살맛 나는 세상일 텐데….

"법대로 해."
내뱉는 이 한마디가
"막가자는 거지"라는 말로
쌍을 이루는 건 왜일까요.

고소.고발 만능의 시대.
법 뒤에 묻혀버린
우리의 대화가
우리의 악수가
우리의 웃음이
그립습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접수된 고소.고발 사건은 33만6464건이다. 일본과 인구비례를 따지면 120배나 많다. 접수 사건 중 30%만 혐의가 인정돼 기소 처리된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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