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OECD 최고 흡연율, 담뱃값 올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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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세계 폐재단과 미국암협회가 190여 개국의 흡연율과 정부 금연정책 등을 분석해서 펴내는 『담배 백과』란 책이 있다. 올봄에 나온 이 책의 3판을 보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금연정책을 실천하는 10개국 중 하나로 선정됐다. 10개국에 포함된 나라들은 미국·캐나다·영국·덴마크·노르웨이 등 서구 선진국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정부와 민간 금연단체들이 그간 흡연율 감소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온 성과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같은 책에 실린 각국의 흡연율과 담배소비량 비교표의 내용이다. 이 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남성의 흡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흡연자 한 명당 소비하는 담배 개비 수 역시 어느 나라보다 많다. 이런 모순된 결과가 나온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많은 돈을 들여가며 추진해 온 금연정책들이 소비 축소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흡연의 피해를 알리는 교육이나 금연구역 확대 등 소위 비가격정책이 갖는 한계 때문이다.

성인 남성 흡연율을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인 20% 이하로까지 떨어뜨린 선진국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런 비가격정책은 담뱃값을 올리는 가격정책과 함께 실시하지 않는 경우 그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 영국 등 북유럽 국가들과 미국 일부 주의 경우 담배 한 갑 가격이 1만원 수준이다. 최근 호주에선 2만원으로까지 인상하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도 2004년 12월 갑당 2000원이던 담뱃값을 500원 인상함으로써 6개월 새 흡연율을 5.5%포인트나 떨어뜨린 전례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담뱃값은 너무 싸다. 이 수준을 유지한다면 아무리 다른 금연정책을 강화해도 흡연율을 더 이상 떨어뜨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국민 건강을 위해 금연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가장 힘든 일이 바로 담배가격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담배가격 인상이 흡연율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담배회사, 저소득층 흡연자들만 더 힘들게 한다는 여론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거나 달리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담배가격을 10%만 올려도 흡연율이 3~5%포인트 하락하고 특히 청소년이나 저소득 계층에선 그 효과가 두세 배나 크다는 사실은 이미 정설로 굳어진 지 오래다.

담배가격을 올리는 게 당장은 저소득층 흡연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궁극적으론 이들을 도와주는 일이라는 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최근 군 면세 담배를 없앤 조치만 해도 군대 내 흡연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긴 하겠지만 담배 중독이 심하지 않은 병사들에겐 금연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물론 이런 가격정책이 흡연율 감소에 더 효과적으로 기여하도록 하자면 다양한 금연지원 서비스가 병행돼야 한다.

맹광호 가톨릭대 의대 명예교수·대한금연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