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운보의 말년 액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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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현재 한국 화단 (畵壇) 의 큰 어른은 월전 (月田) 장우성 (張遇聖) 과 운보 김기창 (金基昶) 이다.

두 사람 모두 1930년대 이당 (以堂) 김은호 (金殷鎬) 문하에서 그림을 시작했다.

이규일 (李圭日) 의 '화단야사2 - 한국 미술의 명암' 엔 그림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영원한 맞수이자 경쟁자인 두 사람에 대한 비교가 수록돼 있다.

나이는 월전 1912년생, 운보 14년생으로 월전이 두살 위지만 그림 입문은 운보가 빠르고, 선전 (鮮展) 추천작가가 된 것도 운보 40년, 월전 44년으로 운보가 앞선다.

선전 추천작가에서 월전이 4년 늦은 것은 이당의 '배려' 에 따른 것이다.

이당은 훗날 두 사람이 실력은 비슷했지만 운보가 청각장애자인 점을 고려해 그같이 결정했노라고 밝혔다.

그러나 해방이 되면서 상황은 역전한다.

월전이 49년 제1회 국전부터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을 겸한 데 비해 운보가 초대작가가 된 것은 59년, 심사위원이 된 것은 60년이다.

예술원 정회원이 된 것도 월전 70년, 운보 81년으로 월전이 앞선다.

여기엔 해방 직후와 6.25전쟁 중 운보가 겪었던 개인적 시련이 영향을 미쳤다.

두 사람은 화풍 (畵風)에서 전혀 다르다.

초기에 운보는 인물과 풍물을, 월전은 인물과 화조 (花鳥) 를 많이 그렸다.

중기에는 운보가 입체작업과 추상.반추상.문자화 (文字畵) 등 다양한 실험을 시도한 데 비해, 월전은 수묵담채와 현대 감각의 문인화를 그렸다.

말기에 들어 운보는 바보산수.청록산수.심상화 (心像畵) 라는 독특한 장르를 개발했으며, 월전은 전통 한국화에 '생각' 을 담아낸 의식화 (意識畵) 를 선보였다.

말년을 보냄에 있어서도 두 사람은 대조적이다.

운보는 일찍이 77년 서울 성북동에 운향 (雲鄕) 미술관을 세워 자신과 부인 고 (故) 우향 (雨鄕) 박내현 (朴崍賢) 의 작품을 소장해오다가 83년 충북 청원으로 옮겼다.

월전은 91년 서울 팔판동에 월전미술관을 세웠다.

운보는 95년 뇌일혈로 쓰러진 후 붓을 놓았으나, 월전은 지난 4~18일 신작 30여점으로 미수 (米壽) 기념전을 가질 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운보는 지난주말 지병 악화로 위독 상태에 빠지더니 이번엔 '그림로비' 사건에 휘말렸다.

사업 실패로 큰 빚을 진 아들로부터 신동아그룹이 그림을 대량으로 사들인 것이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 여부는 차차 밝혀지겠으나 건강악화에 이상한 사건까지 겹치는 등 운보가 말년에 큰 액운을 만난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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