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베이징 남북차관급회담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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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일 베이징 (北京)에 도착한 차관급회담 우리 대표단은 서울 출발 전 임동원 (林東源) 통일부장관으로부터 특명 (特命) 을 받았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시범조치를 북측과 완전합의하기 전까지는 김포공항에 돌아올 생각을 말라는 내용. 그만큼 회담에 거는 정부의 기대도 크고 각오도 비장하다.

◇ 양측 입장.전략 = 정부는 이산가족 문제 논의에 초점을 맞춘다는 복안. 지난 3일 끝난 비공개 접촉에서 회담 의제를 '이산가족 문제를 비롯한 상호 관심사' 로 합의했고, 이를 먼저 협의한다고 못박아 둔 상태다.

특히 생사 확인을 위한 서신교환이나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등을 속히 실시하기 위해 북한으로부터 구체적 시기까지 약속받으려 한다.

회담 관계자는 "비공개 접촉에서 이미 상당한 진전을 이룬 만큼 성사를 낙관한다" 고 말했다.

정부는 또 모든 문제를 제한없이 남북대화의 틀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측이 서해 교전사태를 부각, 사과.재발방지 약속 등 억지를 부릴 경우 단호히 대처한다는 것. 논의는 할 수 있되 이를 차관급회담 의제로 삼거나 이산가족 문제와 선후 (先後)가 바뀌는 일은 없게 하겠다는 얘기다.

북한측의 구상이나 전략은 아직 종잡을 수 없는 처지. 다만 이산가족 문제의 제한적 논의를 통해 우리측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려 할 게 분명하다.

또 남북대화 국면을 지난 2월 북측이 제안한 '고위급 정치회담' 으로 이끌어감으로써 주도권을 쥐려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 쟁점 =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시범조치를 취할 것인가를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우리측은 구체적 방법.시기를 합의서에 명시하자고 요구하겠지만 북한은 제한적이고 단계적인 방안을 주장할 듯하다.

지난해 차관급회담 결렬도 판문점 면회소 설치를 둘러싼 이견 때문이었다.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 (NLL) 문제를 긴급의제로 거론, 쟁점화할 경우 문제는 복잡해진다.

정부는 이미 군사공동위 가동 등 적절한 다른 채널에서 논의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장관이나 총리급으로 회담을 격상시키는 문제도 쉬운 일은 아니다.

◇ 전망 = 회담 관계자는 "비료 등 줄 것을 미리 주고 하는 회담이라 그 어느 때보다 부담이 크다" 고 말한다.

자칫 회담이 결렬돼 아무 성과를 얻지 못할 경우 정부는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어느 정도 자신했던 林장관 등 외교안보팀에 비판이 쏟아질 것은 뻔한 일. 북한군의 인명피해까지 발생한 서해 교전사태도 이런 우려의 한 근거다.

'남측 인사의 평양 방문 중지' 를 밝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16일자 성명이나 북한 해군사령관의 19일자 위협 성명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미 20만t의 비료 지원을 약속받은 북한이 회담을 파장으로 끌고 가지는 못할 것이란 관측이 대체적이다.

북한 태도를 주시할 미국 등 국제사회의 눈도 압박요인이 될 수 있다.

21일 첫 회담 벽두에 오갈 양측 수석대표의 기조발언에 눈길이 쏠리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베이징 =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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