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바긴’ 한·미 엇박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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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1일(이하 미국 현지시간) 미국외교협회 오찬 연설에서 밝힌 북핵 일괄타결(그랜드 바긴) 제안을 놓고 한국과 미국 정부가 다소 삐걱거리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은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21일 발언이었다. 그는 이날 뉴욕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회담 직후 브리핑에서 그랜드 바긴에 대해 “솔직히 모르겠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또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도 그런 얘기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동아시아 정책을 총괄하는 미 국무부 당국자의 이 말은 “그랜드 바긴은 지난 6월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한·미 간에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발표 이전에도 양국 간 조율을 거쳤다”는 우리 정부의 설명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22일 이언 켈리 미 국무부 대변인의 모호한 정례브리핑 내용은 논란을 더 확대시켰다. 그는 “미국과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법에 공동의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면서도 “(그랜드 바긴은) 이 대통령의 정책이고 그의 연설이기 때문에 내가 코멘트 할 것은 아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자 이 대통령이 ‘그랜드 바긴’을 제안하기 이전 양국 간 논의가 충분하지 않았거나, 또는 실제 내용적인 측면에서 양국 간 이견이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은 단순한 해프닝이나 의사 전달 과정에서 나온 착오일 뿐 양국 간에 엇박자가 있거나 입장 차이가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방미 이전에 이미 미 국무부 내 북핵 담당 부서에는 그랜드 바긴에 대한 내용이 통보됐지만, 캠벨 차관보는 오랜 일본 출장을 다녀온 직후여서 이런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며 “또 이미 양국 간에 내용이 공유돼 있는 상황이라 외교장관회담에서도 재론할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도 “그랜드 바긴과 관련된 부분은 워낙 비밀리에 협의돼 왔기 때문에, 그것이 공개되는 과정에서 다소 껄끄러움이 나타났다”며 “미국 정부 내부에서도 부서 간에 내용을 공유하는 데 시차가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미 국무부에서 북핵 문제를 전담하는 라인과 그 외 부서 간에 정보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아 빚어진 해프닝에 가깝다는 설명이었다.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이날 뉴욕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 ‘그랜드 바긴’은 북핵 해결을 위해 6자회담 참가국 가운데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사안”이라면서 “지금까지 논의가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협의를 계속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수석은 “다만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이 개념이 처음 나왔고, 당시에는 (대북) 제재 국면이어서 공개적으로 논의를 진행하지 않았으나 이번에 공개적으로 제안한 것”이라면서 “비공개적으로 협의해 오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 측에서) 다소간 껄끄러움이 있지 않았나 싶다”고 설명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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