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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기·소생술에 의존 연명치료 환자 1555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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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전국 256개 병원에서 1555명의 환자가 연명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중환자실을 운영하는 308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연명치료 환자 수를 조사한 결과 7월 22일 현재 256개 병원(52개는 무응답)의 입원 환자 9만4900명 중 1555명(1.64%)이 연명치료를 받고 있다고 23일 발표했다. 중환자실 환자 100명 중 1~2명꼴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고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의료계는 연명치료 환자를 약 3000명으로 추정했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란 어떤 치료를 해도 환자가 반응을 보이지 않고 6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도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 등을 동원해 생명을 연장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1555명 가운데 3개월 이상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를 보이는 환자가 286명(18.4%) 포함돼 있다. 올 5월 국내 첫 존엄사 판결을 받았던 신촌 세브란스병원 김모 할머니와 비슷한 경우다. 김 할머니는 대법원 판결로 6월 23일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이후 일반 병실에서 3개월 이상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또 공식적으로 뇌사 판정을 받지 않았지만 의학적으로 뇌사에 빠진 환자는 77명(5%)이었다. 연명치료 환자 중 말기암 환자(659명)가 가장 많았다. 합병증을 동반한 심각한 뇌질환 환자(192명)가 그 뒤를 이었다.

최근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등 개별 병원 차원에서 연명치료 중단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지만 연명치료 중단은 불법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가족과 의료진이 합의해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으며 누군가가 고소하면 의료진이 처벌받을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엄사를 인정하는 법률을 만들려고 하지만 이견이 많아 진도가 잘 나가지 않고 있다.

한편 보건의료연구원이 2007년 만성질환 사망자 18만2307명을 분석한 결과 임종 과정에서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비율이 16.5%, 심폐소생술을 한 경우가 17.6%였다. 보건의료연구원 허대석(서울대 의대 교수) 원장은 “거꾸로 말해 말기 환자의 83%가량이 연명치료를 하지 않고 임종한다는 얘기”라며 “법적 보장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의료진들이 일종의 불법 행위를 하고 있는 셈인데 이 같은 문제점을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의료기관에서 사망하는 비율이 1998년 28.5%에서 2007년 60%로 늘었다. 또 임종 직전 입원 기간이 미국에 비해 훨씬 더 길었다. 사망 6개월 이내 평균 입원 일수는 39.6일로 미국의 9.4~27.1일보다 2주 이상 길었다. 중환자실 평균 입원 일수 역시 12.4일로 미국(1.6~9.5일)보다 길었다.

순환기계·호흡기계 말기 환자에서 중환자실 이용률과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 사용률이 모두 높게 나타난 반면 말기 암환자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말기 암환자 중 마약 진통제를 사용한 사람은 62.7%로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90%에 크게 못 미쳐 통증 치료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의료연구원은 이번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기준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마련해 28일 공개할 예정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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