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원철희씨 돈받은 정치인들 밝혀라' 촉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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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원철희 (元喆喜.구속중) 전 농협회장으로부터 수억원대의 로비자금을 받은 정.관계 인사들에 대해 검찰이 전면 재수사에 착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법조계를 중심으로 강하게 일고 있다.

검찰은 元씨로부터 "정치인 등 1백~1백50명에게 한차례에 30만~1백만원씩 정기적으로 돈을 건넸다" 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관련자들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있지만 액수가 적고 元씨가 입을 열지 않아 더 이상 수사할 수 없다" 고 밝혔었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이는 의혹을 캐보지도 않은 채 덮으려는 태도며 검찰이 민감한 사건에 대해 또다시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것" 이라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元씨가 조성한 비자금의 총액이 얼마며 정치인 누구에게 얼마를 어떤 방법으로 전달했는지를 명백히 밝혀내 의혹을 씻어야 한다는 지적인 것이다.

검찰이 처음부터 元씨 비자금 수사에 소극적이었다는 증거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법원에 제출한 元씨의 공소장에 "교분 있는 인사들에게 돈을 줬다" 라고만 기재했고 돈을 받은 정치인들의 숫자와 수수금액은 밝히지 않았다.

검찰은 그러나 언론 보도로 정치인들의 금품수수 사실이 공개되자 "정치인을 포함, 1백~1백50명에게 한번에 수십만원에서 1백만원씩 금품을 전달했다" 는 진술내용을 뒤늦게 확인했다.

검찰은 당일 元씨를 소환 조사한 뒤 "의원 여러 명에게 후원금을 내 기억할 수 없다" 는 진술만을 듣고 또다시 수사를 종결했다.

이에 대해 이석연 (李石淵) 변호사는 "검찰의 기소 편의주의가 수사 편의주의로까지 확대된 것" 이라며 "의혹이 명백한데도 수사하지 않는 것은 잘못" 이라고 비판했다.

민변의 임영화 (林榮和) 변호사도 "정치인들에게 수십만원씩만 줬다는 진술의 신빙성도 의심스럽지만 단순히 액수의 과다가 문제가 아니다.

검찰은 한점 의혹없이 더 큰 커넥션 여부를 밝혀낼 책임이 있다" 고 말했다.

검찰 수사 관계자는 "농협은 정치후원금을 기부할 수 없기 때문에 97년 정치자금법 개정 이후 元씨로부터 금품을 기부받은 행위는 명백한 위법" 이라며 "元씨의 비자금도 확인된 것만 6억원이어서 전체 액수는 알 수 없다" 고 말했다.

게다가 검찰은 "元전회장이 서울이 아닌 지방의 모든 의원들에게 후원금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고 확인했다.

이는 결국 ▶元전회장의 후원금 납부 자체가 불법이고 ▶소액만을 건넸다는 진술도 신빙성이 없으며 ▶후원금 납부도 자발적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는 것인데도 검찰은 수사를 서둘러 종결한 것이다.

김정욱.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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