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인생은 한국경제 축소판' 인텔리노숙자의 인생역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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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현재 신분 : 노숙자. 60세.

학력 : 경기고 53회, 서울대 경제학과 57 학번.

경력 : 한국은행 조사부 재정금융과 연구원, 경제문제연구소 연구원, 대림건설 사우디 지점 차장, 국제종합건설 해외수주팀장, 극동건설 싱가폴 해외영업팀장, 미국 이민 실내장식업, 귀국후 주유소 총무, 고물상인, 노숙자 쉼터 도서관 사서.

서울영등포구문래동 노숙자 쉼터 '자유의 집' 에 6개월째 머무르고 있는 朴길용 (가명) 씨의 이력서다.

그의 인생은 날아오르다가 추락한 한국 경제의 축소판 같은 모습을 띤다.

朴씨는 우리 경제가 성장을 시작하던 60년대 초반에 대학을 졸업했다.

한국은행 조사부에서 '잘 나가는' 엘리트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30대 중반에 늦깍이로 결혼도 했다.

74년엔 건설회사에 입사해 오일 달러를 벌기 위해 모래폭풍이 부는 중동으로 떠났다.

신바람 나는 시절이었다.

76년 사우디 동부 주도 (州都) 다만 상하수도 설치 2억달러 공사도 그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해외건설 붐이 수그러든 80년대 초반 朴씨는 회사에서 물러나야 했다.

국내에서 외롭게 1남2녀를 키우던 아내의 마음도 이미 멀어져있었다.

10년 가깝게 해외 공사만을 맡아 온 그가 국내로 돌아올 자리는 없었다.

朴씨는 '이민은 못 간다' 는 아내를 차차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믿으며 82년 미국으로 떠났다.

홀로 실내장식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朴씨는 향수병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 95년 20여년의 외국 생활을 청산하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어렵사리 주유소 총무 자리를 구해 야간 근무를 하며 주유소를 숙소로 삼았다.

그러나 지난해 봄엔 "현재 월급의 절반을 받고도 일하겠다는 젊은 사람이 많다" 는 말을 듣고 물러나야 했다.

급기야 사글세방을 얻어 고물을 수집했지만 월세 10만원 벌기도 어려웠다.

지난 1월 '자유의 집' 입소자가 됐다.

朴씨는 지난 3월부터 공공근로 임금 47만5천원을 받으며 이곳에 있는 도서관의 사서 일을 보고 있다.

매월 30만원을 저축하고 나머지 17만원을 담뱃값 등 용돈으로 쓴다.

5백만원을 모아 조그만 책 대여점을 내고 자유의 집을 떠나는 게 그의 소망이다.

"아직 제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다시 가족들과 만나는 날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 " 실제 보다 더 나이들어 보이는 朴씨는 자립의 작은 희망을 내비치며 입술을 깨물었다.

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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