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세근 특파원 인도네시아 내전지역 아체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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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록소마웨 (아체) =진세근 특파원]같은 아체인 (人) 조차 가기 꺼리는 금단의 땅 록소마웨.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유일하게 야간 통행금지가 내려진 곳이다.

독립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원주민들이 7일부터 시작되는 총선을 조직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가장 위험한 내전지역이다.

주도 (州都) 인 반다아체를 떠나 꼬박 5시간을 달려 도착한 록소마웨는 예상과는 달리 뜨거운 태양 아래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음산하고 조용했다.

거리에 나붙은 'Referendum, Yes (주민투표 찬성)' 이란 포스터 사이로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장갑차와 지프를 탄 군인들의 경고방송이 정적을 갈랐다.

"지휘관의 명령 없이 10시 이후 집밖으로 나가면 즉시 체포.발포한다. " 영국 BBC.일본 아사히 (朝日) 신문기자 등과 함께 록소마웨가 고향인 데디 주레히 (20) 의 안내로 반군 조직인 '게라칸 아체 메르데카 (자유아체운동)' 의 거점으로 들어갔다.

차창 밖으로 정부청사.골카르당.경찰서 등 게라칸의 공격을 받은 장소가 차례차례 나타났다.

아체인의 분노를 나타내듯 알뜰하게 불탄 채 형해만 남은 모습이었다.

수마트라섬 북부의 아체는 1511년 이후 포르투갈과 영국.네덜란드의 지배를 번갈아 받았던 곳. 1873년부터 1942년까지 계속된 아체 독립전쟁에서는 네덜란드 군대에 1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도네시아 독립 이후 중앙정부는 '아체 특별지구' 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지만 이곳의 천연가스를 노려 자바주민을 대거 이주시키면서까지 철저하게 독립운동을 탄압했다.

이틀 전 반다아체에서 만난 스무르 (SMUR.인민을 위한 학생연대) 의 최고지도자인 아구스완디 (22.시야콸라대 법학4) 위원장의 분노가 떠올랐다.

인도네시아 군대에 아버지와 형을 잃은 공항택시 기사 자발 (41) 의 목숨 건 안내 덕분이었다. "반다아체는 나은 편이다.

록소마웨와 피디.티무르에서는 수십명씩 조직적으로 살해됐다" "군사압제통치 (DOM)가 자행된 지난 9년간 최소한 3만5천명의 아체 주민이 희생됐다.

" 그는 "독립은 우리의 최소한의 요구" 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말대로 록소마웨 교외의 담벽에는 온통 페인트칠투성이였다.

'독립 투표 실시, 자유 아체 만세' 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주민 아프리 (47) 는 "페인트는 학생들이 칠한다. 우리는 돈을 모아 준다.

페인트 값에 보태기 위해서다" 고 말했다.

농부 아크마드 (53) 는 "이곳은 낮과 밤이 다르다" 고 했다.

낮에는 군인들이 반군을 쫓고 저녁에는 아체 독립주의자들이 군인 캠프나 자바인들의 집을 습격하는 살육전이 반복되고 있다.

그제서야 대낮에 죽어 있던 아체가 밤에는 무섭게 살아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야간 통금 사이렌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세상' 과 '아체인의 세상' 을 구분하는 신호일 뿐이다.

밤이 되면 아체인의 위협에 못이긴 자바인과 군인가족들은 도시로 피난하고 있다.

그 바람에 록소마웨 중심지인 쿤다가 (街) 의 군 사령부와 경찰본부 옆에는 멍웅시라는 임시촌락이 3개나 생겨날 정도다.

록소마웨 동쪽 교외에는 인도네시아 정부와 모빌사의 합작기업인 '아룬' 의 대형 공장이 서있다.

이 지역의 보물인 천연가스를 캐내는 현장이다.

이 천연가스가 없었다면 록소마웨의 비극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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