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권에 直言이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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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관부인 옷로비 의혹사건에 대한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인식과 대처방식이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결과가 아니냐는 우려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金대통령이 언론의 보도자세를 마녀사냥식이라고 단정하고, 신뢰성이 확실치도 않은 여론조사를 인용해 김태정 (金泰政) 법무장관을 감싸안는 모습을 보고 많은 국민이 당혹하고 의아해 하고 있다.

무엇이 대통령으로 하여금 그와 같은 현실인식을 갖도록 했을까에서부터 청와대의 민심파악 방식이나 채널에 문제가 있지 않으냐는 등 의문이 무성하다.

우리는 대통령의 '마녀사냥식 언론' 관에 동의할 수 없다.

고관부인들이 엄청난 사회적 충격과 물의를 일으킨 행태를 저질렀고, 청와대 직할지시를 받는 사직동팀이 이를 미진하게 내사 처리했으며, 또 검찰의 수사결과도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언론이 이런 상황을 보도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외국에서 정상외교로 바쁜 일정을 보낸 대통령이 이런 상황인식을 갖게 된데는 국내참모들의 보고가 대통령의 판단을 그런 쪽으로 몰고갔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나돈다.

대통령이 인용한 여론조사는 조사방법의 적절성과 결과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그럼에도 참모들은 이를 대통령에게 그대로 보고해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올바른 상황파악을 방해했다.

더욱 이해가 안되는 대목은 대통령 귀국 전후에 보인 여권내 분위기다.

국민회의는 대통령 귀국 전까지만 해도 민심이반 현상이 심각하며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고, 金장관의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소리가 나왔으나 대통령 귀국후엔 어쩐 일인지 납작 엎드린 태도로 돌변했다.

대통령의 귀국 직후 가진 만찬회동에서 공동여당 수뇌부는 정작 준비했던 민심수습안을 건의했는지조차 말이 없다.

김종필 (金鍾泌) 총리 역시 무슨 건의를 했는지 안했는지 알 수가 없고, 야당 의원들의 방문을 받고서야 도덕성의 문제가 가볍지 않다고 언급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최대위기라고도 할 만한 이런 시점에서 대통령에게 정확한 민심 전달이 안되고, 여권에서 필요한 건의나 정확한 상황보고가 없다면 그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권 수뇌부와 참모들은 대통령의 올바른 판단을 돕기 위해 가감없는 현실보고와 대처방안을 직언했어야 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야당은 논외로 치더라도 현 정부의 개혁정책을 지지해온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즉각 재조사와 金장관 퇴진을 촉구한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를 집권측은 냉철하게 되새겨 하루라도 빨리 적절한 후속조처를 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여권과 청와대 참모들의 직언이 긴요하고 대통령은 또 그런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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