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김정일 상당히 건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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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상당히 건강한 상태이며, 북한에 대한 통치권을 여전히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CNN방송의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때 사람들은 김 위원장이 (권좌에서) 멀어지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했지만, 다시 건재를 과시했다”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지난달 방북 결과를 토대로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에 대해 이 같은 판단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의 건강 등 최근 상황에 대한 미국 측의 이 같은 입장이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 방북 이후 백악관과 국무부 대변인,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등이 김 위원장 건재를 언급했다.

그러나 미 대통령이 처음으로 직접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의미가 크다. 김 위원장 건강 상태가 북한을 통치하는 데 문제가 없으며, 김 위원장 체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미 정부가 공식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전 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김 위원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오바마 대통령 발언 시점이다. 미국은 11일 북한과의 직접 대화 계획을 공개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15일 “북·미가 만나게 되면 비핵화에 따른 인센티브를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에 화답하듯 18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 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다이빙궈(戴秉國) 외교 담당 국무위원에게 “북한은 비핵화 목표를 계속 견지하고, 이를 양자대화나 다자대화로 해결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김 위원장의 태도 변화에 대한 ‘친화적 제스처’의 성격이 담겨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또한 그가 CNN 인터뷰 녹화 당시 클린턴 국무장관과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 등 국무부 라인을 통해 숨가쁘게 진행 중이던 북·미 간 물밑 교섭 결과를 보고받고, 북·미 대화를 허용한 것으로 볼 때 이번 발언은 본격적인 북·미 협상을 앞둔 포석일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체제와 권위를 인정하고, 성과가 있는 협상을 벌이겠다는 의지를 북측에 보낸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김 위원장의 ‘다자회담 수용’ 발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반도 정책을 총괄하는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일본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이 (우리가 요청해왔던) 조건들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며 “중요한 상황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 고위 외교소식통도 20일 “북한이 6자회담 복귀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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