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가민가한 환경지식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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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회사원 최씨 (39) 는 요즘 원자력에 대한 거부감이 예전과 같지 않다. 원전이 대기 오염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핵발전에 대한 반감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주부 김씨 (34) 는 요사이 돌을 갓 넘긴 아이의 기저귀를 천으로 바꿀까 고민 중이다.

"종이 기저귀를 쓰레기통에 처넣을때마 내가 환경오염에 한 몫 단단히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한전은 최근 '깨끗한 에너지, 원자력' 이라는 구호를 앞세워, 원자력에 대한 거부감 덜기에 나섰다. 이 구호는 올들어 전국 곳곳의 야구장이나 축구장 펜스에 빠짐없이 등장, 입장객은 물론 상당수시청자의 눈에도 낯설지 않을 정도다. 쾌적한 환경에 대한 일반의 욕구가 커가면서 기술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시민.환경단체와 기술개발 주체간의 공방도 끊이지 않는다.

녹색연합의 장원사무총장은 "핵 발전소가 청정한 에너지원이라는 광고는 국민을 속이는 것" 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독일 생태연구소의 보고서를 인용, 원전의 경우 1㎾ 전기를 한 시간 생산하면 50g정도의 이산화탄소가 나온다고 말한다.

화력발전은 1백20g. 한전은 그간 원자력의 발전 (發電)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춰, 이산화탄소 발생이 없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원자력이 우라늄의 핵분열에서 나오는 막대한 에너지를 이용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틀림없는 말이다.

그러나 발전에 필요한 우라늄을 채광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까지 따진다면 원자력 역시 이산화탄소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여기에 원전과 화전의 건설과 발전 관련 장비 제조에 따르는 이산화탄소 배출량까지 따지면 계산은 더욱 복잡해진다.

천 기저귀와 종이 기저귀도 환경오염 측면에서 보면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얼른 생각하면 버려도 잘 썩는 천 기저귀가 월등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

종이 기저귀 제조사의 한 관계자는 "수질 오염 배출물은 천 기저귀를 사용할 때 오히려 10배 이상 많다" 고 주장했다. 종이 기저귀의 경우 1회 착용으로 소변을 3회 까지 받을 수 있지만 천 기저귀는 소변 때마다 빨아줘야 하는 만큼 세제 사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

세제는 환경오염의 주범 중 하나다. 그러나 종이 기저귀는 반복 사용이 불가능해 버리는 양은 천 기저귀보다 10배 가량 많다. 결국 요모조모 따지면 판가름이 쉽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무공해 생물 농약' 논쟁도 같은 맥락. 미국의 옥수수 중 상당수는 유전자에 'Bt' 라는 박테리아의 유전자 일부를 집어넣은 것. Bt유전자가 든 옥수수는 따로 농약을 뿌리지 않더라도 옥수수에 치명적인 조명충 나방을 죽인다.

그러나 코넬대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이 옥수수는 조명충 나방 외에 나비의 애벌레까지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농약 살포에 따른 피해를 막으려 개발한 생물농약이 환경을 파괴하는 대표적 사례다.

기술 발달이 환경 파괴를 동반하면서 환경론자와 기술개발 주체가 맞붙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기술 소비자의 입장에선 어느 쪽 얘기가 맞는지 판단이 헛갈릴 정도다.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의 송성수연구원은 "현대 사회의 속성상 기술을 놓고 자신에 유리한 부분만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며 "기술의 전후맥락을 꼼꼼히 따질 수 있어야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컴퓨터 자판 배치의 불합리성은 기술의 이런 속성을 쉽게 알 수 있는 예. 이벌식인 현대의 자판은 한때 손가락에 편한 삼벌식이 검토됐으나 구미권 중심의 기존 이벌식에 대항할 수 없었다는 것. 지금까지 기술의 역사에선 환경보다는 경제성이나 기업의 주도권이 더 중시돼왔다는 설명이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첨단기술들. 그러나 앞에서는 편리함을 주고 뒤로는 환경을 갉아 먹지 않는지, 기술을 보는 새로운 틀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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