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캐리 트레이딩은 美 저금리 정책의 불청객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2호 30면

캐리 트레이딩은 금리가 낮은 국가에서 자금을 빌려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게임이다. 캐리 트레이더들은 최근 10년 동안 일본 엔화를 가지고 게임을 벌였다. 그들은 금리 수준이 제로(0)인 일본에서 자금을 빌려 호주, 뉴질랜드, 아프리카 짐바브웨 등에 투자해 수익을 올렸다.

그런데 캐리 트레이딩이 바뀌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엔-캐리에 이어 달러-캐리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이 일본처럼 경제회복을 이유로 금리를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엔화 대신 달러 자금이 세계 곳곳으로 흘러들고 있다.

달러-캐리 자금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한번은 일본 재무성에 엔-캐리 자금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들이 보낸 자료는 빈칸으로 가득했다. 아무도 모니터하지 않고 있는 사이 악마가 몸집을 불리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엔-캐리 수혜를 봤던 나라 가운데 하나다. 엔-캐리가 한창이던 시절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는 평균 3%포인트 수준이었다. 엔화 자금이 미국으로 유입돼 미 재무부 채권과 구글 주식 등에 투자됐다. 덕분에 미 정부는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무역적자를 메울 수 있었다. 또 미 기업들은 자금을 손쉽게 조달했다.

그러나 엔-캐리 트레이드로 모두가 늘 윈윈한 것만은 아니었다. 죽음과 같은 비극이 엄습하기도 했다. 1998년 위기가 대표적인 예다. 그해 글로벌 시장은 두 가지 충격에 휘청거렸다.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연기) 선언과 미국 헤지펀드 롱텀캐피털의 파산이었다. 직전까지 엔화 가치는 달러 등과 견줘 아주 낮게 유지됐다. 하지만 러시아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롱텀캐피털이 파산하자 엔화 가치는 급등했다. 달러 대비 20% 정도 뛰었다. 엔-캐리 자금으로 판돈을 키워 베팅한 헤지펀드들이 비명을 지르며 무너져 내렸다. 엔화 자금이 역류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정책 담당자들은 엔-캐리 트레이딩을 쉬쉬했다. 그들은 엔화 자금이 짐바브웨 등까지 흘러들어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자산에 투자됐지만 모른 척했다. 자국의 장기 침체와 디플레이션을 해결하는 데만 골몰했다. 요즘 미국 경제정책담당자들도 비슷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들은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를 해결하는 데 집중할 뿐 제로금리 정책이 낳고 있는 부작용(달러-캐리)엔 눈 감고 있다.

달러 가치가 급등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물론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미국의 재정적자와 폭발적으로 늘어난 유동성 공급으로 달러 가치가 지속적으로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기는 하다. 하지만 98년 일본 중앙은행이 마구 돈을 풀었지만 엔화 가치가 급등했듯이 달러 가치도 갑자기 하늘 높이 솟구칠 수 있다. 대형 금융회사가 다시 위기를 맞아 투자자들이 안전한 곳을 찾아 자금을 이동시키면 달러 가치가 한순간에 5%나 10% 급등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9월 15일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 달러의 움직임이 그랬다. 달러 가치가 급등하면 그 파장은 엔-캐리 자금의 역류보다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