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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토크쇼] ① 연예인 무시에 맞선녀에 "당신 아버지 첩 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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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이순재 씨는 일흔다섯의 나이로 현역 배우 중에서는 최고령 반열에 들었다. 그러나 어느 젊은 배우보다 더 왕성한 활동을 하는 그에게서 나이를 짐작하기는 힘들다. 학번은 꽤 차이가 나지만, 같은 서울대 출신 후배인 조영남과 마주앉았다. 연극부를 했다는 공통점을 지닌 두 사람은 대학시절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이며 열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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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부터 사극, 주말연속극, 이제는 영화에서까지 종횡무진 활약하는 배우 이순재. 찍는 작품마다 인기를 얻고 맡는 배역마다 화제를 몰고 있다. 그뿐인가? 숱한 후배들이 그를 콕 찍어 ‘닮고 싶은 선배’라고 말하고, 혹자는 그를 가리켜 ‘배우계의 현인’이라고까지 칭할 정도다.

50년 연기인생, 과오도 있고 얼룩도 있을 법하건만 별다른 스캔들 한번 없이 지금까지 왔다. 그가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것은 정확히 약속시간 10분 전. 이 또한 빈틈 없다. 조영남의 작품 전시회가 열린 서울 청담동 C.T갤러리에서 만난 조영남과 탤런트 이순재는 “형!”, “조 선생!” 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같은 연예계에 종사하지만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가진 두 사람. 자리에 앉자마자 조영남은 준비한 듯 질문부터 던진다.

조영남 형은 모범생 이미지의 아주 품행이 단정한 배우인데 말이지. 재미 없지 않아? 지루하지 않아요?

이순재 본인이 결벽증 때문에 어거지로 품행이 방정하다면 괴롭겠지만…. 각자 다 다른 거지. 개인적 상황에 따라 다르고, 조건도 상대적일 테니까 말이야.

조영남 사실 나는 스캔들 일으키는 재미로 살아 온 거란 말예요. 내가 볼 때 형은 연예인 왜 했나 싶어.(웃음) 연예인인데도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같은 이미지잖아? 어떻게 배우를 시작한 거예요?

이순재 우리 대학생 때 볼 게 뭐 있었어? 취미랄 게 없었잖아? 가끔 낙원동에나 가서 ‘르네상스’라는 음악다방에 앉아 커피 시키는 것밖에 없었다는 말이야.

조영남 웃길 때야. 집에 전축이 있으면 틀면 되는데, 그게 없으니 버스 타고 르네상스까지 가야 했지.

이순재 아니면 영화가 유일한 취미인데, 그게 가장 적은 돈 가지고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것이었거든. 좌석제가 아니라서 한번 들어가 앉아 계속 보고 나오는 거지. 그때 참 좋은 영화가 많았어. 이탈리아의 전후 네오리얼리즘 계열 영화들, <자전거 도둑><무방비 도시> 같은 거.

루키노 비스콘티·페데리코 펠리니·비토리오 데시카 같은 세계적 명장들의 영화 말이야. 프랑스의 ‘누벨바그’, 미국의 ‘비트제너레이션’, 일본의 ‘태양족’… 이렇게 전후 문화의 흐름이 이어졌거든.

내 대학시절이 거장들의 영화가 쏟아져 나오던 때였지. 영국에는 <리처드 3세> 같은 대작을 비롯해 셰익스피어 작품을 영화화한 것이 있었고. 그것을 보면 배우의 정석이 다 나와. 미국조차 상업영화와 예술영화가 공존했지.

조영남 문학적인 면에서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됐구나. 야~ 이거 다 적어놔야겠어. 영화에 대해 엄청 해박하시네!

이순재 당시에는 정말 영화를 예술로 접근했으니까. 상업적인 영화를 하는 사람조차 예술적 의지를 가졌다는 자부심이 있었지.

조영남 형과 비슷한 당시 배우라면 리처드 버튼 정도? 인지도 면에서 보면 로렌스 올리비에보다 리처드 버튼이 형이랑 비슷해요. 그런데 리처드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연애도 하고 그랬는데, 형은 처음 사귄 형수님이랑 중매로 결혼하고 끝났죠?

이순재 우리 마누라는 중매로 만난 것은 아니고. 결혼하기 전에 몇 가지 일이 있었지. 내가 졸업하고 배우생활 시작할 때였는데, 부모님께서 “몇 월 며칠 창경궁 문 앞으로 가면 어떤 색시가 나올 거다” 하시는 거야. 와이셔츠에 등산모 쓰고 나가 기다리니까 혜화동 부촌 쪽에서 아가씨 하나가 오더라고.

처음에는 인물이 썩 눈에 안 들어와 내키지 않았어. 그런데 겨울이 되니까 크리스마스가 오잖아? 심심한 마음에 전화했더니 마침 만나 주더라고. 그렇게 차 마시고 밥 먹고 하는 새 봄이 됐는데, 하루는 이 아가씨가 얼굴이 새파래져서 오더니 “직업이 배우냐”고 묻는 거야.

“맞다”고 했더니 “집안에서 난리가 났다”고 그러더라고. “대체 왜 그러느냐”는 물음에 아가씨가 대답하는데, 내가 평생 기억하는 말이 됐어. “배우는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생활이 무절제하다.”

조영남 아주 정곡을 찌른 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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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 그렇지. “무절제할 수는 있지만 그건 사람에게 달린 거다. 여기가 할리우드는 아니지만 톱이 되면 밥은 먹지 않겠는가” 이렇게 말하고 보니 갑자기 오기가 막 나. 대뜸 “당신 아버지 첩 있지 않냐?”고 물었어. 아가씨네 집이 부자였는데 당시 돈 좀 있는 사람들에게는 첩 있는 것은 기본이었잖아?

조영남 우리 아버지 때는 그랬던 것 같아. 시골에서는 둘째, 셋째 부인이 건넛방에 같이 살기도 했죠. 왜 그런 질문을 한 거예요? 불쾌했던 거예요?

이순재 불쾌했지. 아가씨뿐 아니라 그 집에서 나를 그렇게 봤다는 거잖아? 사실 1970~80년대까지도 우리 직종을 다들 그렇게 봤어.

연예인 광대 취급받던 시절의 설움

조영남 그냥 막 지르신 거네요? “첩이 있지 않냐”고 묻다니. 와, 무자비했구먼. 형은 냉혈한이에요!

이순재 또 내가 그랬어. “당신 집의 돈은 정당한 돈이냐”고. 당시 자유당 측근의 부자들이 돈 벌려고 탈세·매점매석·고리대… 이런 것을 많이 했거든. 우리를 빈곤계층으로 봤으니까 내가 역습한 거지. 그런데 이 아가씨가 1주일 후에 나를 만나더니 “결혼하자”고 그러더라고. 자기가 집을 나오겠다는 거야.

사실 배우자는 평생 같이 가는 거잖아? 요만한 의심이 없어도 힘든데, 처음부터 이렇게 시작하면 안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냥 “좋은 추억으로 남자”고 말했어. 너도 알지만 우리 직종이 1980년대까지도 술상머리에 끌어다 앉히는 대상이었어. 홍보대사 같은 거? 어림도 없었지.

조영남 광대였지. 술상머리에서 비위나 맞추고…. 그럼 그게 몇 살 때예요?

이순재 대학교 갓 졸업하고 군대 갔다 왔을 때니, 스물일곱?

조영남 그 전에는 연애 좀 했어요?

이순재 군대 가기 전 마지막 작품 끝나고 시간이 남기에 국립극장에서 하는 오페라 <리골레토>를 보러 갔어. 그때 친하게 지내던 어떤 배우가 자기 수입이 워낙 적어 출연자들 분장해주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었거든. 나도 분장실에서 그걸 도와주고 있는데 어떤 코러스 하는 아가씨가 눈에 딱 띄는 거야.

그날부터 분장실로 출근했지. 주변 사람들도 눈치채고 슬쩍 나한테 그 아가씨 분장을 맡겨주고는 했고. 당시에는 서울대 문리대 졸업하면 벨트를 하나씩 받았어. 그걸 떡 차고 와이셔츠 바람으로 분장을 하고 있으니 이 아가씨가 버클 보고, 얼굴 보고 하고는 ‘이상하다’면서 머리를 갸웃거렸지. 서울대 나와 분장 조수하고 있었으니, 뭐….(웃음)

조영남 그때 입이 안 떨어졌어요?

이순재 입이 안 떨어지는 거야. 겨우 용기를 내서 “차나 한잔 합시다” 이랬더니 좋다고 하더라고. 명동 태극당에서 만나자고. 그런데 결국 그 사람이 안 나왔어. 그후 군대에 들어가게 돼 편지라도 써야 하는데, 주소도 전화번호도 모르니 서울대 성악과로 보내는 수밖에.

답장 한번 없어서 ‘틀렸구나’ 하고 있었지. 나중에 내가 서울로 옮겨와 졸병생활을 하게 됐는데, 가만히 보니까 우리 학교 졸업식을 하더라고. 그 아가씨도 졸업을 하는 것 같아. 그때는 성악과도 동숭동에 있었으니까 그 운동장에 그 아가씨도 있겠다 싶었지.

조영남 그곳엘 갔어요?

이순재 갔지, 그럼. 그런데 음대 학생들 앞에 가서 얼굴 확인하고 다닐 용기는 없는 거야. 조영남이 갔으면 그랬을 텐데. ‘인연이 없나보다’ 하고 지나치는데 누가 학사모를 던져. 딱 보니까 그 사람이야. ‘이게 꿈이냐 생시냐’ 했지. 이렇게 인연이 닿았는데 결국 그 해에 끝났어. 집안에서 혼사를 재촉하는 모양이었거든.

조영남 남자가 여자 짝사랑하는 그 영화, 제목이 뭐였지?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 형은 어설픈 개츠비였어. 그런데 연애는 얼마나 깊이 했어요? 스킨십 같은 건 없었어?

이순재 그런 것은 없었어.

조영남 그거 말고는 형수 만나기 전에 스캔들 없었어요? 형이 지금 말하는 것은 연애도 아니야.

이순재 제대로 된 연애는 아니었지.

조영남 (웃음) 지금 형수는 어떻게 만났어요?

이순재 고등학교 연극부 연출을 맡아 전국 연극경연대회를 준비하던 때였지.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내가 각색해서 최우수단체상을 탔거든. 지금의 내 처제가 그 연극에 나온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지. 연습을 하는 중간에 웬 이대생이 찾아와 “우리 동생 잘 좀 봐주세요” 그러더라고. 계란 두 개 삶아가지고 와서….

조영남 계란? 어떡하냐, 하하하…!

이순재 그때는 계란이 귀했어. 서울대 연극할 때도 주인공은 꼭 두 개씩 먹어서 주인공 아닌 놈들이 “주인공이라고 두 개 처먹냐?” 이랬거든. 어쨌든 우리가 상을 탄 데다 처제가 연기상을 타서 장인이 저녁을 산 거야. 처제만 상을 탄 것도 아닌데 말이야. 저녁 자리가 끝나자 우리 마누라한테 “저 분 모시고 영화 한편 봐라” 하셨대.

조영남 오오!

이순재 그래서 사귀게 됐는데, 사실 우리 마누라는 한국무용을 했어. 동아신인상도 탔을 정도로 상당히 주목받고 있었지. 그런데 결혼하고서는 대학교 때 잘했던 것을 완전히 접어버렸어.

기획·정리 박미소 월간중앙 기자 [smile83@joongang.co.kr] / 사진 최재영 월간중앙 사진부장 [pressc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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