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재평가'에 YS 왜 발끈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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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영삼 (金泳三) 전대통령이 17일 김대중대통령을 다시 '독재자' 로 비난했다.

지난번 영남지역 방문때 그런 표현을 쓴지 한달여만이다.

이번에는 DJ의 박정희 (朴正熙) 전대통령과 역사적 화해시도를 '오늘의 독재자가 독재의 상징인물을 찬양한다' 고 규정했다.

金전대통령은 수유동 4.19 국립묘지를 참배한 뒤 그런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퇴임후 처음인 성명서에서 YS는 역사를 보는 시각이 DJ와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다.

"박정희정권은 가혹한 인권탄압과 고문, 유신독재로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고 대다수 국민들이 유신독재 아래서 피와 땀과 눈물을 감내해야 했다" 고 YS는 주장했다.

민주계 출신 한나라당 의원이 "그가 민주화투쟁시절 쓰던 용어를 몽땅 동원한 것 같다" 고 지적할 정도로 성명서는 거칠게 朴전대통령과 현 정권을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YS는 "전임정권에 대한 평가는 현 정권이 내릴 것이 아니라 역사가 내릴 것" 이라고 말했다.

DJ의 역사 재평가작업 자체를 부정하려는 투다.

A4용지 3쪽 분량의 이 성명서는 전날 밤 YS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명서를 쓰면서 YS는 "독재자가 독재자를 미화하는 것은 가소로운 일" 이라는 심경을 토로했다고 한다.

4.19묘지 기념관에 전시된 '피를 태워 날을 밝았다' 란 제목의 추모시 앞에서 그는 "지금 우리 시대랑 딱 맞는 말이네" 라고 우회적으로 DJ를 공격했다.

YS의 이같은 '시위' 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관측이다.

자신이 재임중 '역사 바로세우기' 를 통해 4.19와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그리고 5.16, 5.17을 군사쿠데타로 공식 규정했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4.19묘지와 망월동묘역을 국립묘지로 개명, 확장한 것도 내 재임때 이뤄졌다" 고 강조했다.

박정희정권에 대한 재평가 시도와 5공세력과의 정치적 묵계설을 문제삼아 DJ정권을 '독재와 유착한 신독재' 로 규정지으려는 의도가 있다는 정치권의 분석도 나오고 있다.

金전대통령은 자신이 민주주의를 실현한 대통령으로, DJ는 독재자들과 손잡은 또다른 독재자라는 이분법적 논리로 현 정권에 대한 공세의 논리를 만들려는 속셈이 있다는 것이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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