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병원 마저도…' 고개숙인 민노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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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울대병원 노조가 13일 파업 시작 9시간 만에 파업을 철회함으로써 민주노총의 2차 총파업 투쟁이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전망이다.

당장 14일로 파업이 예정돼 있는 이화의료원.경희의료원을 비롯, 오는 20일까지 연쇄파업에 들어가기로 돼있는 보건의료노조 산하 34개 전 병원의 노사협상도 보다 유연해질 것으로 보인다.

보건의료노조는 전통적으로 산하 단위 노조 가운데 조직력이 가장 강한 서울대병원 노조의 행보에 따라 진로가 결정돼 왔기 때문이다.

또 병원노조 연쇄파업이 무산되면 보훈병원 노조 파업 철회.서울지하철공사 노사 재협상 착수 등으로 이미 기세가 꺾인 민주노총의 5월 총파업 투쟁에 찬물을 끼얹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번 2차 총파업 투쟁의 성패는 병원노조들의 파업 강도에 달려 있었다.

병원노조들의 파업이 장기화해 의료 업무가 마비될 경우 환자들의 불편은 물론 사회적 파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지난 96년 말~97년 초 노동계의 노동법 개정 반대 총파업 투쟁 당시에도 병원노조들의 파업이 전체 파업 열기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으며 민주노총이 이번 투쟁에서 병원노조들을 앞세운 것도 이같은 맥락이었다.

서울대병원 노조가 비교적 쉽게 파업을 철회한 것은 민주노총 지도부와의 거리감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4월 말 투쟁 당시 파업에 앞장섰던 서울지하철 노조가 한국통신 노조의 파업 철회 이후 민주노총 전체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무너진 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이다.

당초 계획보다 저조한 금속연맹의 파업 참여도에다 서울대병원 노조의 파업 불발까지 겹친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은 15일 민중대회를 끝으로 사실상 막을 내릴 전망이다.

민주노총은 이제 총파업 투쟁을 마무리하는 방식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에 따라 13일 정부측에 대화를 제의했다.

파업투쟁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함에 따라 투쟁방향을 대화 쪽으로 바꾸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에 대해 '선 (先) 파업철회 - 후 (後) 대화' 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불법파업 중인 민주노총과는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강경 일변도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비판에 직면하고 있어 파업이 끝나는 다음 주부터는 노사정위원회 복원 등을 위한 노정간 대화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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