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신문고] 유학생 발묶는 '병역보증'족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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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앙일보는 기획시리즈 '규제개혁 아직 멀었다' (4월 26일~5월 1일자) 를 통해 어지럽게 얽힌 규제의 실타래를 살펴본 데 이어 민성 (民聲) 의 창구인 '규제개혁 신문고'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신문고에 잇따라 고발되는 시대착오적 규제와 잘못된 관행들을 오늘부터 주 2~3회 소개합니다.

"자식이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보증인을 세우지 못하면 유학갈 수 없다는 말입니까. " 전직 은행원인 김창영 (金昌榮.46.부천시 상동) 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다.

구조조정 회오리에 휘말려 지난해 초 26년을 몸담았던 은행에서 명예퇴직한 그에게는 명문사립 공대 3학년인 아들이 있다.

공부를 곧잘 하는 아들은 지난 3월 학교에서 주관한 단기유학생 선발시험에 합격해 영국 버밍엄대에서 6개월간 연수할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즐거움은 잠깐이었다.

'보증인'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 병역미필인 아들은 해외여행 허가를 신청하러 병무청을 찾았다.

재학 중인 학교 총장의 추천서, 연수예정 대학의 입학허가서 외에도 귀국을 보장하는 보증인 2명 (한명은 아버지나 어머니도 가능) 을 세워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유학생이 병역을 기피하려고 귀국하지 않는 사례가 더러 있기 때문에 보증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학생이 제때 돌아오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물리기 위해서다.

金씨가 아연실색한 것은 최근 바뀐 보증인 관련 병역법시행령 내용을 알고서다.

병무비리가 곪아 터지자 지난 3월 3일자로 기준이 대폭 강화돼 보증인이 무는 과태료가 최고 3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오르고 보증 자격도 연간 재산세 납부액 4만5천원 이상에서 7만5천원 이상으로 바뀐 것이다.

이에 따라 부모의 연간 재산세 납부실적이 7만5천원 이상인 유학생은 부모 중 한사람이 보증을 서고 다른 보증인 하나를 더 세우면 된다.

그러나 부모의 재산세가 기준 이하인 경우엔 다른 보증인 둘을 찾아야 한다.

다행히 金씨는 지난해 재산세가 20만원을 약간 웃돌아 자격을 갖췄다.

그러나 다른 보증인 한명을 구하기가 난감하다는 것.

"보증피해가 속출하는 터라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제가 실직상태여서 친구에게 부탁하기도 껄끄럽죠. 친척에게 말해 보려 하는데, 글쎄요. "

金씨는 씁쓸하다.

요즘 세태에 직계가족이 아니라면 5천만원을 물어줄 위험을 감수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고 金씨는 혼잣말처럼 뇐다.

"부모가 과태료를 낼 능력이 있다면 혼자 보증을 서도 될텐데, 두명이라는 형식이 뭐 그리 중요한지 모르겠어요. 병역비리를 막는다는 구실로 선의의 유학생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것 아닙니까" 라고 그는 항변한다.

이에 대해 병무청 여행계 관계자는 "민원인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지만 규정이 그런데 우린들 어떡하느냐" 고 말했다.

그러나 병무당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연대보증의 족쇄를 오히려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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