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의 중국] 천안문 시위대 홍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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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중국 당국이 8일 베이징 (北京) 전역에 '3급 계엄' 을 선포했다.

사실상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셈이다.

이보다 더욱 놀라운 일은 천안문 (天安門) 광장 부근 창안 (長安)가 (街) 내에 대규모 시위를 허용했다는 점이다.

정부의 공식허가를 받고 이곳에서 시위가 벌어지기는 지난 70년 5월 20일 마오쩌둥 (毛澤東) 전주석이 주도한 '인민반미시위 (反美大遊行)' 이후 꼭 19년만의 일이다.

○…이날 베이징시 미 대사관이 위치한 차오양 (朝陽) 구 폭 10m 가량의 슈수이 (秀水)가는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밀려드는 인파로 교통이 완전 마비됐다.

시위대는 "일어나라. 노예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여" 로 시작되는 국가 (인민의용군 행진곡) 를 부르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제국주의자' '파쇼주의자' 로 미국을 비난했고, 나토에 대해서는 '신나치' 라고 공격했다.

시위대는 또 오성홍기와 각 학교기 등을 흔들어댔으며 '중국을 깔보지 말라' 는 등의 시위 피켓 가운데는 마오쩌둥의 사진도 보였다.

○ …9일 중국 신문들은 1면을 컬러없이 흑백으로만 편집, '국상' 을 당한 것과 같은 비통한 심정을 전달. 특히 인민일보 (人民日報) 는 사망한 신화 (新華) 통신 여기자와 광명일보 (光明日報) 특파원 내외의 처참한 시신을 그대로 공개해 중국인들의 반미 감정을 한껏 부추겼다.

인민일보는 또 '미사일이 3발이나, 그것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날아와 대사관을 명중시켰다는 것은 침략자들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고 발표해 중국인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이날 중국의 신문들은 다른 뉴스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피폭사건과 항의시위를 집중 보도했다.

○ …시위가 상하이 (上海) 를 비롯한 중국 대부분의 주요 도시로 확산되는 가운데 도시마다 수만명씩이 시위에 참석했다.

시위대는 또 반미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로 무장한 채 지도자들의 인도에 따라 해당 지역 미국 공관으로 전진했다가 후퇴하는 과정을 되풀이, 마치 인해전술 시위 같다는 평을 자아내기도 했다.

비교적 질서있는 시위 모습에 중국 공안들은 당초 크게 긴장하지 않았으나 학생들 수가 시간이 지날수록 많아지며 이들 사이에서 '왜 미국 대사관으로 향하는 길을 막는가' 라는 고함이 터지는 등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미 대사관 주변 공안을 수천명으로 증가시키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 …미국은 중국체류 자국인들에게 2급 주의령을 하달했다.

2급 상황은 미국인들이 체재국에서 해를 입을 가능성이 클 경우 내려지는 비상조치다.

불필요한 외출 삼가와 중국인 접촉 주의 등 최대한 몸조심하라는 지시가 포함돼 있다.

1급 상황은 미국인들이 귀국 등 체재국에서 철수하기 시작하는 마지막 상황이다.

한편 CNN방송의 베이징 (北京) 특파원 레베카 매키논이 시위 취재도중 시위대의 한 노인으로부터 머리를 얻어맞는 등 서방기자들이 시위대의 폭력위협에 노출되는 상황이 계속 벌어지는 것으로 전해지기도.

○…후진타오 (胡錦燾) 국가부주석은 9일 오후 6시 (현지시간) 중국공산당과 중국 정부를 대표한 특별성명을 발표, 합법적인 시위는 지지하지만 사회혼란을 야기시킬 과격행위는 삼가줄 것을 중국인들에게 호소했다.

胡부주석은 TV를 통해 생중계된 성명발표에서 "전국 각지에서 일고 있는 반미 시위는 중국인의 분노와 애국열정을 충분히 보여준 것으로, 중국 정부는 합법적 범위 내 항의활동을 견결히 지지한다" 고 말했다.

胡부주석은 그러나 "인민들은 국가의 근본이익을 생각, 과격행위를 삼가고 이 기회를 틈타 사회질서를 파괴할 불순분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고 말했다.

그는 이날 '미국을 우두머리로 한 나토' 라는 표현을 무려 네차례나 사용, 중국의 불만이 어느 국가에 있는지를 분명히 했다.

베이징 = 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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